흑인인권단체 연례회의 차례로 참석해 `흑인 표심'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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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 국제대학교에서 연설한 뒤 청중들에게 손을 흔드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
힐러리-젭 부시 '플로리다 맞대결'…쿠바정책 놓고 날선 대립
힐러리 "냉전 프리즘으로 봐서는 안돼"…부시 "쿠바 민주주의 투쟁에 대한 모독"
흑인인권단체 연례회의 차례로 참석해 `흑인 표심' 공략
(워싱턴=연합뉴스) 김세진 특파원 = 미국에서 두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공화당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31일(현지시간) 부시 전 지사의 '홈그라운드'인 플로리다 주에서 맞대결을 벌였다.
특히 두 사람은 이날 플로리다 주 포트로더데일에서 열린 흑인 인권단체인 전국도시연맹(NUL) 연례회의에 차례로 참석해 흑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플로리다에 쿠바 탈출 주민이 많이 사는 탓에 자연히 두 사람은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해 마무리한 미국과 쿠바간 국교 완전 정상화를 놓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날 마이애미에 있는 플로리다 국제대학교에서 강연을 통해 "쿠바와의 관계 개선은 카스트로 (형제)에 대한 선물이 아니라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쿠바 수도) 아바나의 미국 대사관은 양보의 선물이 아닌 (자유의) 등대"라고 전제한 클린턴 전 장관은 "무역금지 해제가 자유의 후퇴가 아닌, 자유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자유를 촉진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전 지사를 비롯한 공화당 대선주자들이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일제히 비난하고, 플로리다 주에 쿠바에서 압제에 시달리다 탈출한 주민이 많이 살고 있음을 모두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어 클린턴 전 장관은 "공화당 후보들은 과거로부터 배우려 하지도, 어떤 정책이 효과를 내고 어떤 것이 내지 못하는지에 주목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며 "그들은 냉전의 프리즘으로 쿠바와 라틴아메리카를 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맞서, 부시 전 지사는 흑인 인권단체인 NUL 연례회의장에 참석, 연설을 통해 "미국인은 적대 세력에 맞설 줄 알고 우리의 가치를 지킬 줄 아는 지도자를 가져야 한다"며 클린턴 전 장관을 겨냥했다.
이어 부시 전 지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에 독단적으로 양보한 것을 정치적 편의주의에 따라 받아들이는 클린턴 (전) 장관은 두 가지 중 아무 것도 못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부시 전 지사는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이 와서, 쿠바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후퇴를 승인하는 모습은 많은 플로리다 주민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외에도, 흑백 차별 등 미국 내 인종 문제도 주요한 관전 포인트였다.
흑인 인권단체 연례회의에 둘다 참석하다 보니, 인종 문제가 자연스럽게 클린턴 전 장관과 부시 전 지사의 연설 주제가 되었지만, 서로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았다.
클린턴 전 장관은 부시 전 지사 측의 정치행동위원회(PAC) 이름 '라이트 투 라이즈'(Right to Rise)를 공격 소재로 삼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일어설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메디케어를 줄이고 오바마케어를 없애자고 말할 수 없고, 투표할 권리를 부정하면서 '일어설 권리'를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해 조지 부시 정부의 조기투표시간 단축과 선거인명부 작성규정 변경이 흑인의 투표기회를 줄였다는 세간의 비판론을 부각시켰다.
이어 클린턴 전 장관은 "미국에서 인종 문제는 누가 앞서가고 누가 뒤처지는지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보다 1시간 후에 연단에 선 부시 전 지사는 이런 클린턴 전 장관의 발언에는 대꾸하지 않은 채, 인종 문제를 둘러싼 상황 탓에 "사람들이 점점 더 희망적인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게 되는 반면, 왜 분노와 환멸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하기는 쉬워졌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나아가 부시 전 지사는 "오바마 대통령이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과거의 불의가 현재에도 이어지는 것에 눈을 감아 왔다'고 말했는데, 그는 진실을 말했다"고 말해 주로 흑인들로 구성된 약 500명의 NUL 연례회의 참석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두 번에 걸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유권자들로부터 '몰표'를 받다시피 한 점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공화당 후보들로서는 내년 대선에서 이들의 표심을 얻는 일이 지상 과제임은 물론이다.
지난 6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흑인의 81%가 클린턴 전 장관에게 호감을 나타냈고, 부시 전 주지사와의 가상대결에서도 89%의 흑인이 클린턴 전 장관을 지지한 점은 여전히 흑인들이 대체로 공화당을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마크 모리얼 NUL 회장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전통적으로 흑인은 민주당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동기부여가 얼마나 되느냐, 그리고 투표율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부시 전 지사 선거운동본부의 앨리 브랜든버거는 성명을 통해 "클린턴 전 장관이 대선 경쟁에 나설 정도의 성과가 없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잘못된 싸구려 정치 수사를 남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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