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친선특급, '통일 성지' 베를린서 대장정 마감
(베를린=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한반도 통일의 염원을 싣고 1만4천400㎞를 달려 온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통일의 성지'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대장정의 대미를 맞이했다.
31일(현지시간) 오후 4시 30분께 베를린 6·17 거리에 집결한 친선특급 참가단과 재독 한인, 독일 대학생 등 250여명은 간단한 기념 행사를 가진 뒤 풍물패의 길놀이를 앞세워 2㎞ 떨어진 브란덴부르크문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6·17 거리는 1953년 공산주의 독재에 저항하는 동독 주민들의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진 동베를린 중심가다. 당시 동독에 주둔하고 있던 구소련군은 2만명의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55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행진에 앞선 축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흔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자유가 찾아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며 "자유를 향한 열망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 장벽이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서니 'We are one People'(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독일 시민들의 함성과 환호가 들리는 듯 하다"면서 "앞에 놓인 마지막 2㎞ 행진은 통일의 꿈을 향한 우리의 힘찬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선특급 참가단은 동·서 베를린의 상징적 관문으로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뒤 폐쇄됐다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개방된 브란덴부르크문까지 왕복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채 행진했다.
30여분 뒤 참가단은 베를린 장벽 붕괴후 치러진 독일 통일 주민투표를 기념하는 3·18 광장에 도달해 행진을 마무리했다.
한편 친선특급을 타고 베를린에 도착한 안중근 의사의 6촌 손녀 안현민(22·여·경북대 성악과)씨와 고(故)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 이준승(48) 손기정 기념재단 사무총장은 행진에 앞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안 의사의 사촌동생 안봉근 선생이 살던 집터를 찾아 눈길을 끌었다.
이 사무총장은 "일본이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과 차기 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대대적 축하연을 열던 그 시각 축하연에 무단불참한 손기정, 남승룡 선수는 이곳에서 두부와 김치를 놓고 안 선생 등과 한국인만의 승축회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록 초라할 망정 그 자리는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은 한국인의 민족혼을 상징하는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이날 저녁에는 친선특급이 여정을 마무리한 것을 축하하는 리셉션이 브란덴부르크문 알리안츠 포럼에서 열렸고, 야외 특설무대에선 폐막 음악회가 진행됐다.
여기에는 로타르 드 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도 참석해 축사를 했다.
윤 장관은 "친선특급이 러시아, 중국, 몽골, 폴란드, 독일 5개국 10여개 도시를 거치는 동안 참가자들은 현지 주민과 바로 친구가 됐고,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는 유라시아가 하나의 대륙임을 실감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모두가 느끼는 공통된 아쉬움이 있다. 그것은 유일한 단절고리인 한반도 북녘 구간을 거치지 못한 아쉬움일 것"이라며 "독일이 해냈듯 우리도 해낼 수 있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분단의 상징에서 통합과 통일의 상징이 된 베를린을 최종 목적지로 선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폐막 음악회에서는 17박 18일의 여정 동안 한복 디자이너 권진순(66·여)씨가 참가자들의 통일염원을 담은 천조각 1천여개를 한땀 한땀 이어 만든 대형 태극기가 드디어 선을 보였다.
무대 앞에 펼쳐진 대형 태극기 앞에서 유라시아 친선특급 참가단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함으로써 모든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참가단은 이튿날 항공편으로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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