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아버지가 관찰한 몸 이야기…그 안에 물든 인생
다니엘 페나크 장편 '몸의 일기'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세상을 떠난 80대 노인이 딸에게 유품으로 자신의 일기장을 남겼다.
아버지는 10대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기를 썼다. 일기는 '생각'을 쓴 보통의 일기장이 아니라 '몸'에 대해 쓴 것이다.
그렇다고 투병기도 아니고, 건강 유지 비결을 전수한 것도 아니다. 양치질의 귀찮음과 코딱지를 가지고 노는 재미처럼 소소한 이야기부터 동성애, 월경, 불면증, 몽정, 섹스 등 진지한 주제까지 몸에 관한 온갖 생각이 가득하다.
프랑스 소설가 다니엘 페나크의 장편 '몸의 일기'(문학과지성사)는 작가가 오랜 친구 리종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전달받아 책으로 펴내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이어 리종의 아버지가 남긴 편지가 등장한다.
"사랑하는 내 딸, 이게 바로 내 유산이다. 이건 생리학 논문이 아니라 내 비밀 정원이다. (중략) 필요하다고 여기면 출간을 해도 상관없다. 단 그 경우에 저자는 익명으로 하고 - 이름은 아무래도 좋겠지 - 인명과 지명도 바꿔라."
마치 페나크가 친구의 아버지 일기를 기회가 닿아 출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책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페나크가 창작한 것이다. 서문과 아버지의 편지도 소설적 장치다.
일기의 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보이스카우트 활동 중에 숲에 혼자 버려져 극한의 공포를 체험한 다음 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첫 일기의 문장은 "이젠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나'가 몸의 일기를 쓰기로 한 건 겁 먹은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정확히 묘사하기만 한다면, 내 일기는 내 정신과 내 몸 사이의 대사(大使) 역할을 할 것이다. 또 내 감각들의 통역관이 될 것이다."(13세 1개월 10일)
시간이 지나 '나'는 2차 성징을 겪고, 성인이 되고, 손주를 보며, 몸을 가누기 어려운 80대로 늙는다. 그때까지 '나'는 항상 자기 몸을 관찰하며 살아간다.
'몸'을 관찰하며 쓴 일기지만, 그 안엔 결국 모든 인간이 살면서 겪는 삶의 굴곡이 그대로 녹아 들어간다. 2차 성징을 겪는 마음,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난처한 부모의 심정, 노안 맞춤 안경을 처음 사러 간 날의 기분, 검버섯을 처음 발견한 때의 느낌, 퇴직 후의 불안감,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는 일 등 평범한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마침내 죽음이 멀지 않은 시점에 '나'는 관조의 자세로 몸과 인생을 대한다.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86세 2개월 28일)
조현실 옮김. 488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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