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밀러 상병에 텍사스주 정치인들 연명으로 추진
미국, 진주만사건 흑인 전쟁영웅에 최고훈장 승격 추진
영화 '진주만'서 분전 장면 유명, 사후 72년 만에 요청
도리스 밀러 상병에 텍사스주 정치인들 연명으로 추진
(서울=연합뉴스) 김선한 기자 = 일본의 진주만 기습(1941년 12월 7일)을 다룬 영화 '진주만'에서 적기에 맞서 기관총으로 분전하는 흑인 수병의 모습으로 유명한 전쟁 영웅에 대해 고향 텍사스 주민들이 최고 훈장 추서를 신청하고 나섰다.
미 댈러스모닝뉴스(DMN)는 진주만 기습 당시 혁혁한 무공을 세워 일약 전쟁 영웅이 된 도리스 밀러 상병에 대해 전사 72년 만에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해달라고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 등에 요청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에디 버니스 존슨 하원의원(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지역 정치인들이 합심해 밀러의 훈장 등급 승격을 요청하게 됐다고 전했다.
진주만 기습 당시 전함 웨스트버지니아 호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하던 밀러는 기관총 사수가 전사하자 기관총좌에 올라 미친 듯이 날아오는 일본군 전투기들에 사격을 가해 두 대를 격추하는 전공을 세웠다.
텍사스주 와코 출신인 밀러는 또 위험에 빠진 함장 등 동료도 구출한 공로로 이듬해 5월 당시 태평양함대 총사령관인 체스터 니미츠 제독으로부터 직접 해군 십자훈장(Navy Cross)을 받았다.
정상적이라면 비전투 근무자가 빗발치는 적탄 세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숨을 내건 채 기관총으로 적기를 두 대나 격추하고 다시 동료를 죽음에서 구출한 공로는 당연히 명예훈장감이었다.
그러나 인종 장벽이 이를 가로막았다. 해군은 대신 명예훈장보다는 최초의 흑인 수훈자라는 찬사와 함께 한 등급 아래인 해군십자훈장을 수여하는 선에서 '보상'을 했다.
미 정부는 전쟁터에 흑인들을 이끌려고 밀러의 무훈을 모병 포스터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일약 영웅이 됐고 흑인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밀러의 생애는 짧았다. 일본군의 전세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1943년 11월 밀러는 마킨 타라와 전투에서 승선한 항공모함(리스컴 베가)이 일본군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에 침몰하면서 전사했다.
사망 당시 24세였던 그는 여전히 취사병이었다. 인종 차별이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잠시 잊힐뻔한 그의 명예는 그가 전사한지 30년 만에 되살아났다.
미 해군은 1973년 취역한 녹스급 프리깃함(FF-1091)을 그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또 고향인 와코시 역시 지난해 재향군인병원 명칭을 밀러의 이름을 따 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텍사스주민들의 이 요청을 받아줄 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2001년 개봉된 영화 '진주만'에서는 명배우 쿠바 구딩 주니어가 밀러 역을 맡아 열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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