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걸프서 핵협상보다 뜨거운 '타결후 외교전'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핵협상 타결 뒤 걸프지역 정부를 상대로 한 미국와 이란의 외교전이 뜨겁다.
양측 모두 핵협상 타결에 대한 이들의 우려를 걷어내고 지지를 얻어 중동에서 자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확산하려는 의도이지만, 동원하는 논리는 전혀 다르다.
미국은 이번 협상 타결로 이란의 위협을 오히려 줄일 수 있다는 데 방점을 찍으면서 이란의 영향력 확산을 우려하는 걸프의 수니파 정부를 고려, 이에 공동 대처하겠다고 안심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걸프 국가들이 미국의 오래된 맹방으로, 중동정책 수행에 협조해 왔지만, 미국은 이번 핵협상 과정에서 이들과 사이에 생긴 균열을 메워야 할 필요가 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범아랍권 일간지 알샤르크 알아우사트와 인터뷰에서 "이란과 협상한 이유는 간단하다"며 "이란에 대처해야 한다면 핵무기가 있는 이란보다 없는 이란이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걸프지역 정부의 우려에 대해 "핵협상 타결로 미국의 정책 방향이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면서 "이란이 헤즈볼라(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를 지원하고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를 통해 내정간섭을 하는 데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케리 장관은 다음 달 카타르를 방문해, 걸프협력회의(GCC) 외무장관들과 만나 '핵협상 세일즈'를 벌일 예정이다.
22일 사우디를 방문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살만 국왕을 만나 이란의 테러리즘 지원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군사분야 협력 확대를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우디는 핵협상 타결로 이른바 '이란 시아파 벨트'가 확대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미국의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했고 미국은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한 셈이다.
이란의 움직임도 미국 못지 않게 분주하다.
이란은 세계의 공적이 된 '이슬람국가'(IS) 대응이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제를 고리로 걸프 국가에 접근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핵협상 타결 뒤 걸프지역 첫 방문지로 선택한 곳이 쿠웨이트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쿠웨이트에선 지난달 말 IS가 배후로 자처한 시아파 모스크 테러가 일어나 대규모 인명피해가 났다.
자리프 장관은 쿠웨이트 군주와 외무장관을 만난 뒤 "중동 국가들이 공동의 위협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는 게 이란의 뜻"이라며 "이란은 테러리즘, 극단주의, 종파주의의 위협에 맞서는 이들을 언제나 지지해 왔다"고 말했다.
핵협상 합의안이 차질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걸프 국가들이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면 늪에 빠져버린 IS 사태 해결에 이란이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솔깃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자리프 장관은 26일 카타르로 향했다. 카타르는 걸프지역에서 오만과 함께 상대적으로 이란과 관계가 원만하다.
그렇지만, 이란이 배후로 지목된 예멘 시아파 반군 공습의 주축인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의 벽은 여전히 높다.
바레인은 자리프 장관의 걸프 국가 방문 하루 전인 25일 밤 이란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테러 용의자를 열흘 전 검거했다고 뒤늦게 밝히면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바레인은 또 자국민을 '억압받는 국민'으로 언급한 이란 최고지도자의 발언을 문제삼아 이날 이란 주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바레인은 시아파 인구가 70%로 다수여서 이란의 영향에 특히 예민하다.
자리프 장관은 9월 유엔 총회에서 GCC 6개 회원국과 이란 간의 외무장관 회담을 추진해 이들 국가와도 공식 접촉할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걸프 국가들은 수니파 지역으로 반미 성향이 강하지만, 지정학적으로 엮인 탓에 이스라엘처럼 이란과 무한대치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시아파의 맹주이지만 중동의 대국인 이란과 '불가근 불가원'(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정세 안정과 함께 대(對)이란 제재 해제 뒤 경제적 이득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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