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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 친선특급에서 강연하는 이병무 평양 과기대 교수 (페름<러시아>=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25일(현지시간) 오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를 출발해 모스크바를 향해 달리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열차 안에서 평양 과학기술대 이병무 치과대학 설립학장이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2015.7.25 superdoo82@yna.co.kr |
친선특급서 보낸 일곱밤…참가자들 "호텔보다 편해요"
(유라시아 친선특급<러시아>=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사서 고생하러 왔는데 고생을 별로 안 하네요. 호텔보다 기차가 편하다는 사람도 많아요."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서울에서 발대식을 갖고 1만4천400㎞의 대장정에 오른지 12일째인 26일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열차에서 만난 백지은(24·여·건국대 글로컬캠퍼스4)씨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이같이 평가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타고 독일 베를린으로 향하는 '북선' 구간을 택한 백씨는 지난 12일 중 7일밤을 열차 내에서 보냈다.
백씨는 가로 1.7m, 세로 2m 크기의 4인실을 다른 여대생 참가자 3명과 함께 썼다. 한 평도 되지 않는 객실은 좌우에 2층 침대가 놓여 있어 고개를 들기조차 힘들지만 백씨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1층 침대에 나란히 앉아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피곤하면 2층 침대에 누워 쉬면 되니까 힘들 것이 없다"고 말했다.
승객 대다수는 오히려 열차 내에서 3박 4일을 보낸 하바롭스크-이르쿠츠크 구간(3천340㎞)을 가장 즐거웠던 추억으로 기억했다.
열차내에 머리를 감거나 몸을 씻을 공간이 없다는 점도 재기 넘치는 젊은이들에게는 장애가 되지 못했다.
일부 객차에는 생수통을 잘라 만든 즉석 용기가 비치됐고, 현지에서 플라스틱 대야를 구입해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하루 한두 차례씩 열차가 간이역에 멈춰설 때면 플랫폼에서는 즉석 연주회가 이뤄졌다. 매일 연습을 해야 하는 음악가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을 푸는 것이다.
국악단 '소리개' 단원들은 아예 엽서나 플라스틱 병을 악기 삼아 객실에 앉은 채 사물놀이 연습을 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친선특급 참가단은 비좁은 공간 외에도 부상과 질병 등 다양한 문제를 겪었다.
러시아 열차의 객차간 출입구는 두꺼운 강철문을 손으로 여닫는 구조가 많아 모서리에 발등을 찍히거나 타박상을 입는 참가자가 꾸준히 생겼다.
지난 21일 이르쿠츠크를 떠난 직후에는 설사와 복통 등 장염 증세를 호소하는 참가자가 대거 발생해 열차내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원인으로는 바이칼 특산어종인 '오물' 요리가 지목됐다.
친선특급 참가단의 주치의인 이종규 박사는 "21일 2명, 22일 8명, 23일 9명 등 이르쿠츠크를 떠난 직후 약 30명이 장염 증세를 보였다"면서 "참가단원의 10% 이상이 발병한 것인데, 참가단이 먹은 생선이 훈제후 충분히 건조되지 않은 상태로 조리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열차에 탈 때마다 한두 시간씩 시계를 늦추는 일이 반복되면서 시차 문제로 쉬이 피로감을 느끼는 승객들도 많다. 그러나 승객 대다수는 이런 상황마저 낭만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한 참가자는 "안 그래도 북국은 낮이 긴데 서쪽으로 계속 달려가는 열차 안에 있다보니 어제는 지평선에 걸린 석양이 한 시간 가까이 지속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면서 "마치 상대성 이론을 직접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열차 한 켠에선 친선특급 참가자들의 통일염원을 담은 천조각 1천개를 이어붙여 대형 태극기를 만드는 바느질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한복 디자이너 권진순(66·여)씨는 "혼자서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계신다. 자신이 글을 쓴 천을 직접 꿰매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평양 과학기술대 이병무 치과대학 설립학장도 이 태극기에 '남북을 연결하는 꿈의 철도가 개통되길 기원합니다'란 글이 적힌 천을 꿰매 붙였다. 베를린 통일기원행진에 사용될 이 태극기는 독립기념관에 영구 보존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친선특급 열차팀장(Head of Train) 알렉세이 트루노프(48)씨는 "작게는 한러 관계 증진, 넓게는 남·북·러와 유라시아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일조하기 위한 열차의 열차팀장이 돼 무한한 영광"이라면서 "이번 여정에서 언어문제를 전혀 느끼지 못했고, 참가단 여러분께 친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진복 코레일 대변인은 "우리는 과거 선조들이 달렸던, 그러나 남북 단절 이후 잊혀진 길을 달린 것"이라면서 "이번 친선특급이 통일과 남북철도 연결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선특급은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전 11시 43분께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종착역이자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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