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

편집부 / 2015-07-22 05:00:00


<역사속 오늘>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







(서울=연합뉴스) 1955년 7월22일 서울지법에서 나온 판결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판 카사노바'로 불린 26세 청년 박인수 피고인의 혼인빙자간음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이었다.

피고인 박씨는 해군 대위로 복무하던 중 애인의 변심으로 상처를 받고 방황한 끝에 불명예제대를 당했다. 앙심을 품은 박씨는 사회에 나가 군 장교를 사칭하며 고급 댄스 홀에서 '여자 사냥'에 나섰다. 1954년 4월부터 1년 동안 그에게 농락당한 미혼여성들이 무려 70여 명에 이르렀다.

여대생 2명이 박씨를 혼인빙자간음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결혼을 약속한 적이 없고 여자들이 제 발로 따라왔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자신이 상대한 여성 중 처녀는 미용사 한 명뿐이었기에 '혼인빙자'는 성립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박씨의 주장은 '순결의 확률은 70분의 1'이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더 유명했던 것은 1심 재판장 권순영 판사가 내놓은 판결. "피고인 박인수의 '혼인빙자간음죄'는 무죄로 한다.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란 무엇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는 한편에선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세례가 강하게 밀려들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 요구가 커진 시절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1953년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가 포함될 만큼 여성의 순결과 정숙을 중시하고, '여성의 정조는 사회의 보호 대상'이라고 여기는 기존 관념이 위력을 발휘한 시절이기도 했다. '박인수 사건'은 이런 두 가지 가치의 충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박씨는 2심과 3심에서 징역 1년의 유죄 판결을 받고 형기를 채운 뒤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혼인빙자간음죄는 2009년에야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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