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대마 해체'가 시작되다

편집부 / 2015-07-19 05:00:00


<역사속 오늘> '대마 해체'가 시작되다







(서울=연합뉴스) 1999년 7월19일 오전 서울역 앞 대우센터에서 대우그룹이 '구조조정 가속화 및 구체적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이날은 정주호 구조조정본부장이 나섰지만, 6일 뒤에는 김우중 회장이 직접 "대우그룹의 경영을 조기에 정상화하고 명예롭게 퇴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우 구조조정안의 핵심은 김 회장 개인재산을 포함해 총 10조원 규모 자산을 담보로 제공할 테니 단기성 자금의 만기를 연장하고 4조원을 추가로 빌려달라는 것. 연말까지 자동차 부문과 ㈜대우를 중심으로 그룹을 개편하지 못하면 담보를 처분해도 좋다고 약속했다. 그룹 공중분해를 각오한다는 내용이었다. 칼자루를 쥐고 있던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곧바로 대우가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직후 "뇌관 제거 작업에 돌입했다"고 평했다. '뇌관 제거 작업'은 같은해 8월26일 대우그룹 주력 계열사 워크아웃 발표, 11월1일 김 회장과 사장단 퇴진으로 이어졌다.

1967년 3월 대우실업으로 출발한 대우그룹은 재계 서열 2∼3위를 달리는 '대마'(大馬)로 성장했지만 '세계 경영'으로 상징되는 사업 확장을 추진하다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 외환위기 극복에 골몰하던 정부가 1998년 5대 그룹 재무구조 개선 작업의 하나로 금융기관의 회사채 보유를 제한하면서 대우에 비상등이 켜졌다. 일본 노무라증권 서울지점이 같은해 10월29일 내놓은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이미 대우의 유동성 위기와 워크아웃 가능성이 적혀 있었다.

대우는 '대우전자-삼성자동차 빅딜'마저 무산된 뒤 해체의 길을 밟았다. 대우 계열사들은 지금은 완전히 '남남'이 돼 제 살 길을 찾고 있다. 김 회장은 1999년 10월 출국한 뒤 2005년까지 외국을 떠돌았고,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의 음모'를 주장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김 회장이 한때 경기고 6년 후배인 이헌재씨를 대우그룹 상무로 데리고 있었다는 인연도 새삼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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