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17일간의 마라톤 협상 과정 공개
목멘 케리·고함 지른 자리프…이란 핵협상 뒷얘기(종합)
자리프 "이란 위협 말라" 고함에 라브로프 "러시아도" 외쳐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17일간의 마라톤 협상 과정 공개
(서울=연합뉴스) 홍성완 장재은 기자 = 이란 핵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돼 공식 발표만을 앞둔 지난 14일 오전 오스트리아 빈의 팔레 코부르크 호텔.
협상 파트너였던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 등 협상 참가국 대표들이 자못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으로 마주 앉았다.
각국 대표들은 알파벳 순서에 따라 차례로 핵협상을 마무리하는 소감을 한마디씩 던졌다.
마지막으로 발언권을 얻은 케리 장관은 스물두살에 해군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이후로 나는 젊은이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국가가 전쟁을 피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목이 멜 정도로 감정이 북받친 케리의 발언이 끝나자 각국 대표들은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WP와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17일간 계속된 이란 핵협상은 이렇듯 교착과 고함, 타협, 애증이 뒤섞인 가운데 장애물을 하나하나 치워가는 힘든 과정이었다며 협상 뒷얘기를 자세히 소개했다.
NYT에 따르면 협상 3주차에 접어들면서 넘어야 할 힘든 관문이 하나 남아있었다.
이란에 대한 재래식 무기와 미사일 기술 금수조치를 유지할 것인지 여부였다.
케리 장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은 금수조치 연장을 주장했고 이란의 자리프 장관은 반대했다.
주요 6개국 멤버로 핵협상에 참여해 온 러시아와 중국은 자리프 장관을 지지했다.
양국의 지지에는 이란 무기 시장을 고려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13일 자정 직전 케리 장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막바지 장애 문제를 협의했다.
두 사람은 단지 이란이 장래 언젠가 훨씬 덜 위험한 무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이란 핵개발을 막을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했다.
그 결과 재래식 무기는 5년간, 유도 미사일은 8년간 금수조치를 유지한다는, 어느 쪽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NYT는 핵협상이 타결된 것은 한가지 이벤트나 적대관계인 미국-이란 간의 마음을 오가는 대화, 또는 게임을 바꾸는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수년간에 걸쳐 각자 상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점차 이해해나가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협상 타결을 가져온 요인들은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다.
카부스 빈 사이드 오만 국왕이 이란과의 막후채널을 구축하겠다며 백악관을 설득하고 나선 것과 오바마 대통령이 고령의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보다 상대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로하니 대통령이 선출된 것도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 에너지부 핵연구실 전문가들의 농축우라늄 문제에 관한 견해는 정치 지도자들 간의 핵협상에 새로운 타협 공간을 마련해줬다는 평가다.
물론 35년간 계속된 미국-이란 간 추한(ugly) 역사를 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케리와 자리프 두 사람을 빼고는 협상타결을 얘기할 수 없다.
지난주 양측 협상단 간 고조된 긴장은 자주 폭발했다.
케리, 자리프 장관은 지난 5일 협상장 밖으로 새나올 정도의 고성언쟁으로 주변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자리프 장관이 지난 4월에 합의된 것으로 인식되는 사안을 다시 협상 대상으로 들고 나오면서 케리 장관이 격분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자리프 장관이 "국가의 자긍심과 존엄을 모욕한다"는 등의 자주 하던 말을 되풀이하자 "당신 나라에만 자긍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짜증을 냈다.
케리, 자리프 장관의 언쟁은 케리 장관이 보좌관이 방에 들어가 밖으로 소리가 새나온다고 말리면서 겨우 진정됐다.
이어 같은 날 새로운 협상안이 새로 들어오자 미국 측이 너무 세게 압박해온다고 생각한 자리프 장관은 "이란을 위협하지 말라"고 고함을 쳤다.
이때 협상테이블 맞은편 끝에 앉아있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긴장된 분위기를 깨려는 듯 "러시아도 (위협하지 말아라)"라고 외쳐 방안에는 어색한 웃음이 터졌다.
협상 장소를 빈으로 옮기기 이전 지난 3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을 당시 자리프 장관은 미국 측 조 바이든 부통령과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장관,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원자력기구 대표 등 양측 협상단 핵심 인물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분위기를 새롭게 한 일화도 알려졌다.
대화록에 따르면 자리프는 "역사에서 오바마, 바이든, 케리, 그리고 모니즈가 있는 시기는 다시 없을 것이며 로하니, 자리프, 살레히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서로를 치켜세우는 발언을 했다고 NYT는 전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