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국제('65년전 외조부 행보 되밟는 아베…')
55년전 외조부 행보 되밟는 아베…외조부처럼 파국맞나
기시 전 총리는 미일안보조약 개정후 국민적 반발에 사임
(도쿄=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일본 우익 지도자의 강공 드라이브, 미국과 일본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상황, 국회를 에워싸고 반발하는 시민들….
16일 중의원 본회의 강행 처리로 7부 능선에 올라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집단 자위권 법제화가 1960년 자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당시 총리가 주도한 미일 안보조약 개정의 양상과 '판박이'로 진행되고 있다.
기시는 승전국 미국과 보다 대등한 관계를 맺는다는 명분 아래 동북아 냉전에 일부 관여하는 방향으로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나섰다.
기시는 일본 내란 시 미국의 개입 조항 삭제, 주일미군의 배치 등에 대한 양국 정부의 사전 협의제도 신설 등으로 조약의 불평등성을 해소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일미군에 대한 공격에 자위대와 주일미군이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내용과 일본의 안전과 극동의 평화를 위해 미군이 일본의 시설 및 구역을 사용하도록 허용한다는 내용 등이 개정 조약에 명기돼 논란의 불씨가 됐다.
현재의 집단 자위권 법안과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은 미국의 안보상 이해와 일본 지도자의 전후체제 탈피 목표가 맞아 떨어졌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은 55년 전 동북아 반공 전선의 전초기지로서 일본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고, 지금은 군비감축 기조 속에 아태지역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 일본의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또 우익 지도자 기시와 아베는 둘다 이른바 전후체제(패전의 결과로 주어진 평화헌법 체제) 탈피 및 보통국가화를 정치인생 지상목표로, 그 일환으로 각각 미일안보조약 개정,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에 나섰다는 점에서 일치점이 있다.
국민들의 반발 등 전개 과정도 흡사하다.
기시의 미일안보조약 개정 추진 당시 공산당, 사회당 등 야당과 학생운동 세력은 일본이 다시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더욱이 추진 주체가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용의자였던 기시라는 점에서 무모한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일본 민중의 반발은 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960년 5월 기시 정권이 야당 의원들을 배제한 채 조약 개정안 비준안을 강행 처리하자 미일안보조약개정 반대 시위대가 국회 의사당을 포위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시위대 중 사망자가 나오면서 '기시 정권 타도'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기시 내각은 그해 7월 15일 총사퇴했다.
아베 총리의 집단 자위권 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야당과 시민의 반발도 격렬했던 55년 전과의 '맞비교'는 어렵지만 확산 일로다.
법안이 중의원 소위를 통과한 15일 밤 국회의사당 주변에 모인 시위대는 집단 자위권 법안 관련 시위 사상 가장 많은 약 6만 명(주최측 추산)에 달했다.
향후 관심은 외조부 총리 임기의 엔딩 부분까지 아베 총리가 따라가게 될지, 외조부와 다른 '해피엔딩'을 쓰게 될지다.
어쨌든 2012년 12월 취임 이후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로 주가가 고공 행진을 거듭하는 동안 반석같은 권력 기반을 구축해온 아베 총리의 롱런 가도가 최대의 시험에 봉착했음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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