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제단·악마의 똥'…되돌아본 교황의 남미순방
물신주의 비판·파격적 사과·폭넓은 포용·친환경주의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의 남미순방이 지구촌에 적지 않은 메시지를 전하며 12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교황은 지난 5일부터 이날까지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를 차례로 방문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죄수들과 대화했고 격조 높은 성당뿐만 아니라 진흙탕의 빈민가도 찾아봤다.
현재 부의 양극화를 낳는 신자유주의 세태에 대한 교황의 비판은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일부 있을 정도로 수위가 높았다.
교황은 "인간 노동의 결실을 공정히 분배하는 작업은 단순한 형제애가 아니라 도덕적 의무"라며 "기독교인에게 그 책임은 더 커 계명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미에서 남긴 인상적 장면이나 발언은 순방이 끝나고도 여전히 세계 각국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 현대판 금송아지 숭배 =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1일 파라과이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만나 현시대의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자본주의의 물신주의 속성을 가톨릭 교리가 금지하는 우상숭배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교황은 자본주의를 겨냥해 "가난한 이들이 '돈의 제단'에서 희생된다"며 "부유한 이들이 '현대판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모든 문화가 부를 창출해 경제성장을 해야 하지만 정치계, 재계 지도자에게는 가난한 이들에게도 일부 이익이 돌아가도록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좌파 지도자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교황이 사회주의를 역설하고 있다고 반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신의 우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나왔을 뿐이라고 따로 설명했다.
◇ 대통령뿐 아니라 죄수까지 = 가장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만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론은 남미에서도 여전했다.
교황은 지난 10일 볼리비아에서 가장 크고 악명이 높은 산타크루스-팔마솔라 교도소를 방문해 죄수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는 "당신들을 만나지 않고서는 도저히 볼리비아를 떠날 수 없었다"며 "나도 용서를 경험했고 수많은 죄악으로부터 용서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교도관들에게 "수감자들에게 모욕을 주지 말고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고난을 짊어지게 하지 말고 용기를 북돋우라"고 당부했다.
◇ 비신자·동성애자도 포용 = 지난 11일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교황과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모임에는 게이 인권운동가가 사상 처음으로 공식 초대됐다.
교황청은 동성애에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이 만남은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아르헨티나 대주교 시절에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교황이 된 이후로는 전임 교황들보다 동성애에 훨씬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교황은 2013년 7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로 신을 찾는다면 내가 어찌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파라과이에서 집전한 남미순방의 마지막 미사에서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며 "비신자, 박해받는 이들, 실직한 이들, 다른 문화들, 죄인까지도 반기자"고 호소했다.
◇ 식민주의 방조 사과 =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국가 스페인이 남미를 식민정복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죄를 사과했다.
교황은 지난 9일 볼리비아의 토착민, 운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과 은행이 약소국을 종속시키는 새 식민주의를 구사한다며 이 같은 과거 역사를 언급했다.
그는 "아메리카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토착민들에게 많은 중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사죄한다"고 말했다.
앞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과거 가톨릭이 남미에 저지른 악행을 사과한 적이 있었다.
가톨릭 학자 앤드루 체스서트는 CNN방송을 통해 "남미에 대한 교황의 사죄가 이렇게 완전한 적은 처음"이라며 "남미 순방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 '악마의 똥'에 위협받는 지구 = 교황은 지난 7일 에콰도르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자리에서 정부에 아마존 개발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교황은 인간이 창조된 세상 만물을 돌볼 임무를 맡았다는 교리를 토대로 환경에 대한 인류의 무한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 세계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면서 후세대에 돌려줘야 할 빚"이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일 볼리비아 방문 때는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며 "모든 고통, 죽음, 파괴의 이면에서 '악마의 똥'이 악취를 풍긴다"고 말했다.
그는 "돈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은 악마의 똥"이라며 지구를 착취에서 보호하려고 나서지 못하는 세계 지도자들이 비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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