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선원 꾀어 대포통장 개설한 일당 첫 적발
대포통장 하루만에 20만원→110만원…일반인도 유통에 가담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국내에 잠시 들어온 외국인 선원을 이용해 대포통장을 개설·유통한 범죄가 처음으로 적발됐다.
이번 대포통장 유통에는 범죄조직과의 연계나 범죄경력이 없는 일반인들도 대거 참여해 충격을 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부산에 입항한 러시아 선원들 명의의 통장을 유통한 러시아 교포 A(33)씨와 한국인 김모(36)씨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또 공범인 조모(39)씨와 러시아 선원 B(42)씨 등 15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해외로 달아난 주범 이모(30)씨와 다른 러시아 선원들을 수배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 유학파로 러시아어에 능통한 이씨는 지난 2월 9∼13일 A씨와 함께 부산 초량동 텍사스촌의 주점에서 러시아 선원 20명에게 접근해 대포통장을 만들었다.
이씨는 러시아 이름을 쓰고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소개하면서 사업에 필요하니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해 넘겨주면 20∼35만원을 주겠다고 선원들을 유인했다. 선원들은 돈벌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의심 없이 통장을 개설해 넘겨주고 다른 동료도 소개해줬다.
이씨는 이렇게 넘겨받은 통장 20개를 휴대전화 수리 일을 하는 지인 김씨에게 1천300만원을 받고 처분했고, 김씨는 다시 이를 동네 선배 조모(39)씨에게 1천700만원에 넘겼다.
조씨는 2월 14일 서울 영등포역 인근 커피숍에서 이를 다시 2천200만원에 팔려고 시도하다 신고를 받고 대기하던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조씨에게서 대포통장 20개를 모두 회수했고, 즉시 추가 수사를 벌여 이튿날인 15일 부산에서 김씨도 체포했다.
압수 당시 대포통장은 연결된 체크카드, 공인인증서가 담긴 USB 저장장치, 1회용 비밀번호 발생기(OTP) 등과 함께 있었지만 체포·압수가 빠르게 진행돼 범죄조직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대포통장의 가격은 불과 만 하루 만에 처분·매입 과정을 4번 거치며 개당 20만원에서 110만원으로 5배 이상으로 뛰었다. 경찰은 일반적인 대포통장 시세가 개당 100만원대로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직후 공범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키르기스스탄으로 달아났다.
경찰은 러시아어에 능통한 이씨가 러시아 선원들이 국내 사정에 밝지 않은 점과 선원들의 국내 체류 기간이 짧아 나중에 발각되더라도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려운 점을 노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특히 이씨와 다른 공범이 범죄조직과의 연계는 물론이고 별다른 범죄경력도 없는 일반인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씨와 A씨를 제외한 나머지 공범들은 휴대전화 수리기사, 휴대전화 매장 업주, 인테리어업 등 번듯한 직장이 있는데도 돈벌이가 될 거란 생각에 대포통장의 유통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인들조차 단순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할 정도로 대포통장 유통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경찰은 외국인 선원을 이용한 대포통장 유통 범죄가 처음 적발된 만큼 지방해양수산청과 각 항만공사 등에 수사 결과를 통보, 외국인 선원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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