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지능화' 대검 홈피까지 가짜로 만들어
금융정보 입력하게해 계좌 몽땅 털어…보이스피싱 22% '피싱결합형'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한 통의 전화가 이런 비극을 낳을 줄 몰랐다. 지난 1일 오전 10시께 회사원 김모(30·여)씨가 대검찰청 직원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이 직원은 김씨에게 '당신 명의로 대포통장이 개설됐다, 조치가 필요하니 대검찰청 홈페이지로 접속하라'고 했다.
놀란 김씨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이 직원이 불러준 주소로 들어갔다.
이 직원의 지시대로 배너를 클릭하고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하니 정말로 대검에 김씨가 관련된 사건이 접수돼 있었던 것.
이 직원은 이어 '계좌에 있는 돈이 범죄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거래 정보를 요구했고, 김씨는 대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해당란에 계좌번호, 계좌 비밀번호,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보안카드 번호 등 온갖 금융정보를 입력했다.
이 직원은 다시 '조만간 휴대전화로 인증번호가 가니 그 인증번호도 불러달라'고 했다.
이 직원은 김씨로부터 인증번호까지 받고서는 "30분 있으면 해결해 줄 테니 기다려라"라고 안심시켰다.
30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김씨는 초조해졌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운 지구대를 찾아가 좀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걸려들었다는 걸 경찰에게서 듣게 됐다. 대검 홈페이지는 범인들이 만든 가짜 홈페이지였다. 30분 안에 해결해 준다는 말도 '현금 300만원 이상 지연인출제도'의 지연 시간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
김씨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의 계좌에 있던 5천여만원이 몽땅 털린 뒤였다.
김씨 사례와 같이 가짜(피싱)사이트에 접속을 유도해 금융정보를 캐낸 뒤 범인이 직접 인터넷뱅킹을 통해 피해자의 계좌에서 돈을 빼가는 '피싱결합형' 보이스피싱이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12일 경찰청이 3월 9일∼6월 25일 사이 보이스피싱 범죄 3천463건을 분석한 결과 피싱결합형이 21.9%를 차지했다. 경찰이 보이스피싱의 세부유형까지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범인이 불러주는 계좌로 돈을 송금하라는 전통적인 계좌이체형이 전체 보이스피싱의 75.3%로 가장 많다.
하지만 이런 피싱결합형 범죄가 5월 160건, 6월 207건으로 최근 들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범죄자들 입장에서 보면 피싱결합형은 전통적인 보이스피싱 수법보다 피해자를 속이기 쉽고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다.
일단 말로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그럴듯한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개인정보가 입력되면 사건접수번호가 뜨도록 해 놓으니 피해자가 믿지 않을 수 없다.
또 피해자의 모든 금융정보를 얻게 되니 범인이 피해자의 계좌에 있는 모든 돈을 한 번에 털어갈 수 있다.
전통적인 수법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계좌이체를 해야 하니 범인들이 큰 금액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금액이 너무 크다 보면 피해자가 이체를 머뭇거릴 수 있어서다.
피싱결합형 범죄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20∼30대 피해자도 증가하고 있다. 이 범죄에 속아넘어가려면 피해자가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알고, 인터넷 뱅킹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싱 결합형 이외에 신종 수법도 나타났다.
지하철 물품보관함이나 우편함에 넣어 두라는 보관형(1.6%)과 범인이 금감원 직원 또는 검찰 직원이라고 사칭해 피해자로부터 직접 돈을 받는 대면접촉형(0.9%)이 최근 모습을 드러난 보이스피싱 범죄다.
퀵서비스 등으로 돈을 부치라는 배송형(0.4%)도 적지 않다.
보이스피싱 범인들은 주로 수사기관을 사칭했다. 3월 9일∼6월 25일 보이스피싱 범죄 중 66.3%가 이에 해당한다. 지난해 63.3%에서 3.0% 포인트 늘었다.
주로 검찰 사칭인데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1팀'이 보이스피싱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금융기관 사칭의 비중은 22.4%로 지난해 10.8%에서 갑절로 급증했다. 대개 금융감독원을 사칭해 '계좌 보안조치를 해주겠다'고 속이는 식이다.
납치를 빙자하는 경우는 5.1%로 작년 9.4%에서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보이스피싱 범죄가 늘어난 데 이어 상반기에도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자 보이스피싱 근절에 나섰다.
보이스피싱 발생건수는 2011년 8천244건에서 2012년 5천709건, 2013년 4천765건으로 감소하다 지난해 7천655건으로 급증가세로 돌아섰다.
이어 올 상반기엔 4천723건으로 작년 동기와 비교해 65%나 뛰었다.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677억원으로 1년 전보다 84%이나 불어났다.
경찰은 이에 따라 보이스피싱을 단순 사기가 아닌 '범죄단체'로 보고 가중 처벌하기로 하고, 각 지방경찰청에 '전화금융사기 대응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도록 했다.
또 피해가 느는 피싱결합형 범죄와 피해 비중이 높은 여성과 젊은층에 대한 피해 예방홍보도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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