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만난 친선특급>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

편집부 / 2015-07-10 09:29:29
△ 할아버지 발자취 되짚는 손기정 선수 외손자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고(故)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인 이준승(48) 손기정 기념재단 사무총장. 이 사무총장은 이달 14일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독일 베를린까지 열차를 타고 1만 1천㎞를 달리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의 일원으로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되짚는다. 2015.7.10 hwangch@yna.co.kr

<미리만난 친선특급>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하이라이트인 마라톤 경기에서 결승 테이프를 끊어낸 고(故) 손기정 선수는 감격의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시상대에 오른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가슴에 붙은 일장기가 부끄러웠던 탓이다.

올림픽 경기 직후 손 선수가 친구에게 보낸 '슬프다'란 석자가 쓰인 엽서는 당시 그의 심경을 짐작하게 한다.

손 선수의 외손자인 이준승(48) 손기정 기념재단 사무총장은 이달 14일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독일 베를린까지 열차를 타고 1만1천㎞를 달리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의 일원으로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되짚는다.

이 사무총장은 "손기정 선수에게 이 길은 세계 도전과 승리의 길이었고, 일제 강점기의 조선이 세계와 연결되는 길이었다"면서 "여정 속에서 손 선수를 바로 알리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평화의 대륙'이란 비전을 이뤄내는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 1926년 청년 손기정은 대륙횡단철도를 지나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 길을 되짚는 심경은.

▲ 손기정 기념사업을 하지만 할아버지가 가신 길을 되짚는 것은 사실 처음이고 많이 설렌다. 우리는 침대차로 가지만 당시는 더 열악했겠지. 그 환경에서 손기정, 남승룡 두 선수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을지 궁금하다. 60시간 넘게 계속 기차를 타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정차하는 역마다 내려 달렸을 것이다.

그 길은 세계로 도전의 길이었다. 손기정의 도전의 길은 (국권피탈로) 우리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조선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고, 조선인 대표를 원하지 않았던 일본인들을 실력으로 이겨내고 나간 것이다.

그 길을 손자인 제가 되짚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에서 자신의 국적이 코리아라고 말했다. 조선이란 이름이 세계역사에서 지워진 상태에서 코리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손기정에게 대륙횡단철도는 세계 도전의 길이자 승리의 길이고, 일제강점기의 조선이 세계와 연결되는 길이었다.

-- 서울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 아쉽죠. 통일이 됐으면 좋겠고 평화통일이었으면 좋겠다. 2015년에 또다시 손기정의 스토리를 만든다면 평화의 이야기, 남북평화통일에 대한 행사로 추진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임진각에서 평화마라톤대회를 한다.

남북관계가 여의치 않아서 임진각을 통해 개성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고, 민간인통제선(DMZ)을 뛰면서 하는 것으로 진행될 것 같다.

북한 선수의 출전도 불투명한데, 임진각-개성 코스와 북한 선수 출전 모두 올해 성사가 안 된다고 해도 북측에 제안하고 내년에라도 다시 시도할 생각이다.

손기정 선수는 일제강점기였기에 기쁜 우승자가 되지 못했고, 해방 이후에도 신의주 출신이면서도 남쪽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북에서는 잊혀진 영웅이 됐다. 역량으로 평가 받아야 하는데 이념 대립 등으로 한 사람이 올곧게 평가받지 못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비전 중 하나가 평화의 대륙인데 여기에는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한반도는 왜 분단과 대치로만 기억돼야 하느냐. 정말 평화가 필요한 곳이 이곳이다. 이번 친선특급이 코리아발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손기정 선수가 가장 작은 단위의 평화를 이루는 도구로, 불쏘시개로 쓰일 수 있길 바란다.

-- 손기정 선수는 평화보다는 승리의 표상 아닌가.

▲ 손기정의 생에 대한 키워드는 무엇일까. 첫째로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그는 '슬픈 우승자'가 아니라 '기쁜 우승자'가 됐을 것이다. 두번째로 남북한 공히 인정받는 영웅이었던 손기정은 남북분단으로 북쪽 고향에선 잊혀진 존재가 됐다. 또 하나는 (과거 정권은) 손기정에게도 빨간 줄을 그었었다. 집안의 아픈 이야기이나 할아버지도 간첩단으로 엮일 뻔 한 적이 있다. 1970년대는 재일교포 뭐만 대도 엮으면 엮는 시기였다.

외삼촌 일본유학 당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소개로 한 재일교포에게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알고보니 이 교포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쪽 사람들도 도와주고 있었다. 1970년대만 해도 민단과 조총련 구분이 잘 안 돼 있었다. 이분이 외삼촌에게 서울 시내 한 일간지 편집장에게 편지를 부탁했고, 외삼촌은 할아버지를 통해 편지를 전달했다. 할아버지는 일본 가는 길에 외삼촌에게 답장을 줬는데, (중앙정보부가) 간첩단으로 엮으려고 보니 손기정이있는 것이다. 외삼촌은 중앙정보부 분소에서 며칠간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났지만 (중앙정보부는) 주홍글씨를 남겨뒀다. 저희 집안에 '연좌제'가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삼촌은 그래서 일본 민단에서만 생활했고, 민단 중앙본부 국장으로 일하면서 1988년 서울 올림픽때 재일교포 모금으로 경기장을 짓는 등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했지만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았다. 제 개인적으로도 학사장교 임용에서 한 차례 이유없이 떨어진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현충원에 안장되실때 영정을 들면서 '음지에서는 그들이 힘이 있을지 몰라도 양지에선 손기정이다.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연좌제란 걸 걸었지만 국민은 손기정에게 연좌제를 걸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또 아픈 것은 친일파의 논리가 나올 때마다 손기정 선수를 걸고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라 잃은 민족에게 자신감을 줬던 손기정의 우승이 70여년이 지났다고 일본을 위한 우승이라고 한다면 너무나 아픈 일인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베를린까지의 여정에서 손기정 선수를 바로 알릴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 베를린에선 무엇을 할 생각인가.

▲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태극기를 단 동상을 2010년에 베를린으로 가져갔으나 장소 조율이 되지 않아 한국대사관저에 설치돼 있다. 이걸 베를린 메인 스타디움 등에 설치했으면 좋겠다.

또 베를린 메인 스타디움에 우승자 명패가 있는데 한번도 본인이 일본인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 손기정 선수는 'Son, Japan'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항상 한국인이라고 인터뷰하고 사인도 그렇게 했지만 힘의 논리에 의해 일본 국적으로 돼 있는 것이다.

역사는 그대로 기록돼야 하는 만큼 지금 와서 'Japan'을 한국으로 바꿀 수는 없지만 옆에 괄호를 치고 'Korean'이라고 함께 적어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독일올림픽위원회측에 전달할 예정이다. 단 한 단어에 불과하지만 이는 일제강점의 역사와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를 세계인에게 계속 전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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