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위기> "인슐린도 떨어졌어요"…고통 커지는 그리스인
의약품 품귀 현상 심화…지지부진한 협상에 불안감 커져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아니, 인슐린 없이 어떻게 당뇨를 관리하라는 겁니까?"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부 부촌의 한 약국. 약국 세 곳을 전전하고도 인슐린을 사지 못한 72세의 당뇨환자 이오시프 페르디카리스는 마침내 약사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스에서 자본통제가 시작된 이후 해외 송금이 불가능해지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의약품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나타난 풍경이다.
페르디카리스는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에게 "국민투표에서 협상안 '반대'에 투표한 것이 후회된다"며 "이 꼴을 좀 봐라. 난 약조차 살 수 없고 다음 주면 우린 드라크마(그리스의 옛 화폐 단위)를 써야할 지도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5일 그리스 국민투표 이후 시민들이 보여준 환희가 빠르게 사그라진 아테네에서는 여전히 진전 없는 협상에 대한 불안함과 계속되는 자본통제로 인한 고단함이 이어지고 있다.
현금 부족은 갈수록 심화돼 이번 주말 무렵이면 시중은행의 현금 보유고가 바닥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페르디카리스의 사례처럼 의약품 품귀 현상은 생존까지 위협한다.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분유나 상비약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약사 만도 니콜로풀루는 WSJ에 "이미 심장질환과 고혈압 약이 부족해졌는데 그나마 그리스산 제네릭(복제약)이 있어 오리지널 제품이 떨어져도 대체가 가능하다"며 "그렇지만 인슐린이 거의 바닥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국민투표에서 협상안을 수용하자는 데 표를 행사했던 사람들의 좌절감은 더 크다.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을 어린 손녀들과 함께 지나가던 74세의 이아니스 콘스탄티니디스는 "치프라스가 어떤 합의라도 끌어냈으면 하는데 이미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에 질려버린 것 같다"고 한탄했다.
그는 "손녀들이 어려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은 아는 것 같다. TV에서 항상 은행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비춰주니 '할아버지, 무슨 일 있어요?' 묻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막판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통장 잔고가 하루 최대 인출한도인 60유로에도 못 미친다"는 27살의 실직자 이오아나 무자키는 "채권단이 기싸움을 하는 중이며 결국은 물러서서 그리스를 유로존에 남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우리가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더 이상의 긴축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해서 유럽이 그리스에 벌을 줄 것 같지는 않다"면서 "게다가 그리스에는 '희망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는 속담도 있다"고 부연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