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죽(竹)의 장막'이 열린 날

편집부 / 2015-07-09 05:00:00


<역사속 오늘> '죽(竹)의 장막'이 열린 날







(서울=연합뉴스) 1971년 7월9일, 중국 황제들의 낚시터였던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 '미국인 손님'이 찾아왔다. 미중관계 개선이라는 극비 임무를 띠고 온 헨리 키신저 미국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키신저의 중국 방문은 극비의 연속이었다. 키신저 일행은 베이징으로 직행하지 않고 당시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과 태국 방콕, 인도 뉴델리, 파키스탄 산악 도시 라왈핀디를 거쳤다. 언론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라왈핀디에서 키신저는 몸이 불편하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잠적해버렸다.

베이징으로 날아간 키신저는 "작지만 기품있고 눈에서 빛이 나며 표정이 풍부한"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만나 '미중 화해'라는 세기의 드라마를 엮어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듬해 역사적인 미중 정상회담과 1979년 미중 수교의 길을 열었다.

두 나라의 해빙 무드는 이른바 '핑퐁 외교'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1971년 4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미국 선수단이 중국 선수단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1949년 중국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뒤 수십년간 적대시해오던 두 나라의 행보에 전 세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두 나라가 오랜 반목을 뒤로하고 손을 잡은 것은 '소련 견제'라는 공통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미국은 베트남전의 실패를 만회하고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고, 중국은 소련과의 갈등국면을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극복하려했다.

키신저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된 미중 화해는 '죽(竹)의 장막' 속에 있던 중국을 세계무대로 끌어내며 세계 질서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며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 이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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