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르포> 관광 성수기에 대중교통 무료운행
자본통제에 지하철·버스 요금 안받아…"당연한 일" 시민들 한 목소리
(아테네=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승객분들에게 알림> "아테네 대중교통이나 공항으로 가시는 분들은 추가 안내가 있을 때까지 무료입니다."
8일(현지시간) 오전 출근시간, 아테네 지하철 3호선 메가로 뮤지끼역에 있는탑승권 판매기계 4대에 부착된 안내문이다.
바로 옆에 있는 판매박스에도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시민들은 빨간 불이 깜박거리는 개찰구들을 그냥 지나쳐 지하철 플랫폼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탑승권 판매기계 옆에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 뿐이었다. 10여명의 시민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테네 지하철 요금은 1회 탑승권의 경우 1.4유로(약 1천700원). 일일 탑승권은 4유로(약 5천원).
지난달 29일 그리스 정부가 은행 영업 중단과 ATM을 통한 하루 현금 인출 한도를 60유로(약 7만5천원)로 제한하자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이 요금을 받지 않기 시작했다.
공항버스(요금 5유로) 역시 무료다.
'대중교통 무료 제공'은 시민들이 현금이 부족한 고통을 겪는 비상 시기에 일상생활의 한 부분인 만큼 이해할 만한 조치다. 자본통제 조치로 가뜩이나 위축되고 있는 경제 운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한 긴축 조치를 요구하는 채권단 입장에서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만 하다. 나아가 그리스 정부의 '관대한' 복지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허리띠를 졸라맬 의지가 과연 있는지 의구심을 키울 만하다.
그리스 재정난의 배경으로 여러 요인들이 거론되지만 오랜 기간 지속돼온 정부의 지나친 복지 지출도 그 중 하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아테네 지하철 1~4호선과 노선버스는 모두 공영이다. 벌써 10일째 무료 운행하고 있다. 한달의 3분의 1 기간 수입이 없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그리스 관광 성수기다. 관광객들은 공짜 요금의 특혜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또한 놀라운 점은 그리스 언론들에는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 있을 뿐 이 조치가 합리적인지 한번 쯤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는 보도는 찾기 어렵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립박물관 가이드를 하는 40대 여성 디미드라 씨는 "그 돈들은 모두 독일로 간다. 유로존으로 가는 돈"이라며 "그리스가 돈이 없는 상태에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생업에 종사하는 50대 회사원 마놀리 씨도 디미드라 씨와 같은 견해를 밝힌 뒤"정부가 잘 하는 일"이라고 칭찬했다.
아파트 관리원인 루카스 씨도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문을 닫은 비정상적인 시기에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한 조치는 그리스 국민들에겐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싶다.
그리스 정부가 자본통제를 언제 해제할 수 있을지 아직 불투명하다. 오는 10일께면 해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그리스 정부와 국제 채권단이 협상을 타결하기 전까진 '대중교통 공짜'는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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