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르포> 이맘 알하산 탄신일…핵협상 와중에 주목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2일(현지시간) 테헤란 시내 육교와 고가도로 변엔 금색, 분홍색, 연두색 같은 밝은 색깔의 깃발이 휘날렸다.
이날 시내 모스크(이슬람 사원) 입구도 만국기와 비슷한 천연색 깃발과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에 쓰는 전구로 장식됐다.
시아파 무슬림이 숭모하는 두번째 이맘(종교 최고지도자)인 알하산의 탄신일을 축하히기 위해서다. 이맘 알하산의 탄신일은 라마단 15번째 날, 서양력으로 하면 올해는 7월2일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종교적 기념일이지만 이란 현지에선 이번 탄신일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이맘 알하산과 핵협상이 역사적으로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이다.
2013년 말 본격화한 이란 핵협상은 그해 9월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연설이 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메네이는 "외교에서 절절한 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오래 전 '영웅적 유연성'(heroic flexibility)으로 기술된 사실을 믿는다. 어떤 경우엔 유연성이 긍정적이며 매우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이후 '영웅적 유연성'이라는 구절은 핵협상의 키워드이자, 서방과 협상에 반대하는 강경 보수파의 공세를 막는 이란 정부의 방패가 됐다.
이란 핵협상팀 대표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은 4월2일 협상 잠정타결 뒤 "영웅적 유연성을 발휘한 하메네에 최고지도자께 감사하다"고 했다.
이 구절은 즉흥적으로 지어낸 말이 아니라 1천300여년 전 7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632년 예언자 모하마드가 죽은 뒤 4대 지도자(칼리파)가 된 알알리(시아파의 첫이맘)는 당시 다마스쿠스 군사령관인 무아위야 1세의 세력에 암살된다.
알알리의 아들이 바로 5대 지도자이자 예언자 모하마드의 외손자 이맘 알하산이다.
이맘 알하산은 우마이야 왕조를 창건한 무아위야 1세와 전쟁을 벌이기 직전 지도자 자리와 내놓는 것을 조건으로 661년 평화협상을 체결한다. 무슬림끼리 유혈사태를 피하고 동생 후세인(시아파의 3대 이맘)과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시아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맘 알하산의 평화협상을 두고 후대에서 찬반이 갈리지만 그에게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1969년 당시 30세였던 하메네이는 이 평화협상을 칭송한 아랍어 책을 이란어로 번역하게 되는데 그 주 제목이 '이맘 하산의 영광스런 평화협상'이었고, 부제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영웅적 유연성'이다.
하메네이가 영웅적 유연성이라는 구절을 언급, 핵협상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을 때 이를 아는 이는 모두 이맘 알하산의 역사를 떠올리면서 핵협상 타결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다.
그러나 하메네이가 과연 이맘 알하산의 평화협상만을 염두에 두고 영웅적 유연성을 화두로 던졌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2000년 5월 하메네이는 연설에서 이맘 알하산의 평화협상을 '강요된 평화'라고 표현한 탓이다.
당시 하메네이는 "미국이 아니라 그보다 강한 어떤 나라도 이슬람 세계에 이맘 알하산의 평화협정을 강요할 순 없다"며 "적들(서방)이 강하게 압박한다면 카르발라의 사건이 재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르발라 사건이란 680년 이맘 알알리의 동생 이맘 후세인이 수니파 우마이야 왕조의 강력한 군대에 비장하게 맞서다 살해된 사건으로 시아파에겐 잊지 말아야 할 비극이자 종파적 정체성이다.
공교롭게 핵협상 시한 직전 맞은 이맘 알하산의 탄신일에 이란 핵협상의 최고 결정권자인 하메네이가 내세운 '영웅적 유연성'의 진의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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