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성 경쟁에 함몰된 '상아탑'을 꼬집다
빌 레딩스의 '폐허의 대학'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취업률 1위!'·'취업사관학교'·'공무원 시험 다수 합격!'….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대학 홍보문구들이다.
과거 중세의 대학은 종교를 바탕으로 순수하게 학문을 연구하는 집단이었고, 19세기 들어서는 민족국가의 발달에 따라 민족문화를 지키고 재생산하는 원천으로서 기능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학의 모습은 어떠한가.
대학이 전통적으로 추구해온 이성과 학문의 발전, 고유문화를 수호하는 기능은 희미해진 반면 대학평가 순위, 취업률, 연구비 규모, 외국인 학생 비율 등과 같은 각종 수월성 지표가 대학의 가치를 매기는 새로운 기준이 됐다.
심지어 옥스퍼드대 뉴 칼리지와 같은 유서 깊은 기관조차 채용 광고를 비롯한 모든 공고문에서 '수월성에 전념하겠다'는 내용을 넣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대 비교문학과 부교수로 재직했던 빌 레딩스(1960∼1994)는 저서 '폐허의 대학'에서 이런 대학의 상황을 두고 수월성만 추구하는 몰락기를 맞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대학 본연의 기능을 저버리고 수치와 효용성만 따지는, '기업화'돼 버린 대학의 모습은 책 제목과 같은 '폐허의 대학'일 뿐이라는 것이다.
"'수월성'은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현금 관계와 흡사하다. 따라서 그것은 참도 거짓도 아니고 무지하지도 않고 자의식도 없다."(31쪽)
책은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불과 3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레딩스가 생전 대학에서 발표했던 글을 모아 사후 2년 만인 1996년 출간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나온 책이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상황을 매우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최근 중앙대가 취업률 등을 주요 지표로 하는 한 이른바 '대기업식 대학 구조조정'에 나섰다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바 있다.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 등에서 발표하는 대학평가 결과에 대학들은 일희일비하고 이 과정에서 돈이 되지 않는 순수학문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레딩스는 그러나 대학이 낭만적 향수에 머물거나 새로운 대학의 이념을 재창안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대학이 '폐허'가 된 현실을 인정하되 그 폐허 곳곳에서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대학이 폐허가 된 기관임을 인정해야 하며, 한편 낭만적 향수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그 폐허에 거주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277쪽)
책과 함께. 368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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