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면 작가 김종학의 보물창고…"골동품으로 안목 키워"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비싼 것, 싼 것 가리지 않고,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멋대로 사다가 집에 그냥 쌓아 놓는다. 목기도 있고 민속품도 있고 도자기도 있고 잡동사니도 있다. 가짜를 사기도 하지만 간간이 현대적인 것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종학 컬렉션, 창작의 열쇠'전은 미술작가 김종학(78)이 오랜 기간 수집해온 전통 목가구, 석물(石物), 농기구, 민예품 등을 선보이는 자리다.
일반인에게는 화가로 유명하지만, 그는 전문 컬렉터이기도 하다.
옛 벨기에 영사관 건물이었던 남서울생활미술관 앞마당 중간에는 뒤집힌 물확 몇 개가 놓여 있는데, 이것마저도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김종학의 수집품이다.
1, 2층 전시공간에선 나무로 만들어진 크고 작은 가구와 처음 보는 농기구, 작가의 그림 등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작가는 자신의 수집인생을 돌아보며 '재미있다', '엉뚱하다'는 말과 함께 전시작을 설명할 때면 '비례감이 좋다', '개성이 강하다'고 평했다.
전시된 목가구는 나뭇결이 보이고 색감이 깊어 고즈넉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파블로 피카소도 수집을 많이 했다"며 "골동품 수집가가 그림도 잘 그린다"고 말했다.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하고 있는데 "수집을 하면서 공부가 되는 게 많다"는 작가의 말이 이어졌다.
농기구 하나를 봐도 그 기능이나 실용성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조형성을 가진 조각 작품으로 마주한다고 한다.
구조가 간결하고 비례감 있는 수집품을 좋아한다는 그는 자신이 봤을 때 직감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면 망설임 없이 구입한다고 들려줬다.
그는 "사람을 보든, 그림을 보든 안목이 높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른 넘어 선배 컬렉터를 따라나선 수집의 길에서 재미를 느낀 작가는 별도 보관 창고를 둘 정도가 됐다.
회화, 도자기는 비싸니 어쩌다가 돈이 생기면 작은 목기부터 사기 시작했다.
골동품상과 얘기를 주고받는 게 재미있어 서울 장안평 골동품상을 한 번 둘러보려면 3~4시간이 걸렸다.
흔히 말하는 '눈의 즐거움'을 누렸다.
1989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목가구 280여점을 기증했다.
수집을 끝내려 했지만, 골동품상을 드나들다 보니 마음에 드는 것이 자꾸 눈에 띄어 사고 나면 창고에 넣어두고선 "언젠가 빛을 보겠지"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종학 작가 옆에 있던 딸 김현주 씨는 순간 "아버지는 나쁜 남자"라며 "마음에 드는 수집품을 보면 여인을 만난 기분이라면서 반해서 계속 사귀는 게 아니라 다른 여인으로 (시선이) 옮아가더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객원 큐레이터로 참가한 김씨는 도록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옛 물건을 파는 가게, 골동품상을 돌아다녔다"며 "내 심미안은 작가를 닮아 있었고, 또 조금씩 나만의 안목도 키워지고 있었다"고 적었다.
작가는 "내가 몇 번은 비싼 돈을 줘 바가지를 썼다"면서도 "물건값을 한 번도 깎지 않으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물건이 들어오면 연락이 왔다"고 돌아봤다.
김종학은 설악산에서 그곳의 풍경을 담아 '설악의 화가'로 불리고 캔버스를 가득 채운 원색의 꽃으로 '꽃의 작가'로도 알려졌다.
작가는 "꽃의 화가도 좋지만 나는 사계절을 그렸다"면서 "더 보태면 인물도, 자수도, 민화도 그렸다"고 소개했다.
그는 "내 눈앞에 있는 무엇을 그리는 게 아니라 기억해 뒀다가 그린다"며 "자연을 보고 잊어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게 내 그림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열심히 본 뒤 내재화한 것에서 나의 그림은 출발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8월16일까지다. 문의 ☎ 02-598-6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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