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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 유형문화재 전각장 정민조씨 (울산=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최근 열린 울산시 문화재위원회에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전각장(篆刻匠) 정민조(71·울주군 서생면)씨. 2015.6.29 <<울산시>> leeyoo@yna.co.kr |
50년 전각 인생…울산무형문화재 정민조씨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나무를 파다가 보면 어느새 모든 것을 잊게 됩니다. 물아일체의 순간이 주는 흥분에 빠져 이 길을 계속 걸어왔습니다."
'전각 장인' 정민조(71)씨는 29일 울산시 무형문화재로 선정되면서 50년 넘게 지켜온 예술의 길을 인정받았다.
특히 나무에 새기는 목전각과 쇠붙이에 새기는 동전각의 조형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 후 제1공화국의 국새를 전각한 인물로 가장 유력시되는 석불 정기호 선생의 아들이다. 그런 만큼 자연스럽게 전각에 입문하게 됐다.
정씨는 "중학교 들어갈 때쯤 아버지 어깨너머로 보고 익히면서 시작한 이후 내 길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껏 왔으니 50년은 족히 넘게 나무를 만졌다"며 "무형문화재에 선정돼 기분은 좋지만,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힘든 순간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각으로는 돈을 잘 벌 수 없다는 사실은 항상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는 "전각으로 낙관을 만들어 팔아 생활을 했는데 낙관을 쓰는 사람이 매우 한정적이다 보니 가정형편이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재료 값이 많이 드는 것도 부담이다.
그는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좋은 나무를 구해야 하는데, 나무 한 덩이 가격만 1천만원이 넘는다"라며 제작과정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는 나무나 금속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전각을 예술품으로 승화하는 순간의 희열을 잊지 못해 수십 년째 전각도를 놓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나무에 글씨를 새겨넣다가 보면 1시간이 1초처럼 지나간다. 어느 순간 내가 하늘에 앉아 있는 듯한 그 희열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전각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목전각을 예술작품으로 사려는 구매자들 때문에 보람을 느끼고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울산에서 개인 전시회를 여는 것이 마지막 바람이다.
부산에서 1968년 첫 개인전 연 이후 용인, 서울과 일본 등에서 개인전을 연 적이 있지만, 터를 잡은 울산에선 지금껏 전시회를 열지 못했다.
정씨는 "울산은 아직 예술가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냉정한 도시"라며 "작품 활동을 끝내기 전에 꼭 한번 울산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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