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어떻게 죽어 어떻게 묻혔을까?
이현진 박사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펴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가경(嘉慶) 5년 경신(1800) 6월28일 유시(酉時·오후 5~7시)에 조선국왕 정조가 창경궁 영춘헌 동온돌에서 승하했다. 이제는 임금이 다시 일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이날 질병내시(疾病內侍)가 왕을 부축해 동쪽으로 머리를 뉘게 했다.
국왕은 함부로 죽을 수도 없었고, 절차에 따라 머리는 동쪽으로 하고 죽어야 했다. 동쪽은 생명이 동트는 땅인 까닭에 동쪽에 머리를 두면 혹시라도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염원을 담는 행위였다.
그의 죽음을 감지한 종척집사(宗戚執事)가 임금이 누운 어상(御床) 곁으로 나아가 햇솜을 입과 코 사이에 얹어두고 솜이 움직이는가를 살피는 속광을 했다. 숨이 끊어졌음을 확인하자 안팎에서는 곡을 시작했다.
내시는 국왕이 평상시 입던 웃옷인 곤포를 왼쪽에 메고 지붕 앞 동쪽 물받이로 해서 지붕에 올라가 동상(棟上)인 위(危)를 밟은 채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엔 옷 허리를 잡으면 북쪽을 향해 세 번 '상위복(上位復)이라고 외쳤다. "임금이시어 돌아오시라"는 뜻이다. 이를 혼을 다시 부르는 일이라 해서 초혼(招魂)이라 한다. 북쪽을 향하는 이유는 그쪽이 죽음을 관장하는 방위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큰일은 제사와 전쟁 두 가지에 있다는 말이 이미 좌전에 보이듯이 동아시아 국가에서 각종 제의(rituals)는 국가 대사 중의 대사였으며, 특히나 군주의 장례는 그 의식이 장중하기 짝이 없었다. 그만큼 인력과 돈 역시 국가 재정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많이 들었다.
장례가 다른 국가 의식과 다른 점은 느닷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다른 의식이 대체로 절기에 맞추어 주기로 반복하는 데 견주어 죽음은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런 죽음 중에서도 국왕의 죽음은 왕조국가에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조선후기 종묘 전례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현진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의 근간 '왕조의 죽음, 정조의 국장'은 난수표를 방불하는 각종 전문용어가 넘쳐나는 조선 국왕의 죽음과 장례 절차를 정조의 그것을 중심으로 자세히 정리한 단행본이다.
'규장각 교양총서' 일환인 이번 연구가 가능한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정조를 비롯한 조선후기 국왕 혹은 그에 버금가는 왕실 주요 인물들의 장례 절차를 도설(圖說)로 정리한 각종 의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조의 죽음만 해도 '정조국장도감의궤'를 비롯한 관련 기록이 풍부하게 전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에는 거의 예외없이 무덤 전면에 실제 제수를 놓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건물이 있다. 이는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한자인 고무래 정(丁)을 닮았다 해서 정자각(丁字閣)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런 정자각을 만드는데 얼마만한 시간이 소요되었을까? 이번 책에서 정리한 내용을 따라 정조의 사례를 보자.
모든 국왕과 왕비 혹은 이들보다 어른인 태후 등의 장례식에는 그것을 거행하기 위한 임시 관청이 설치되기 마련이다. 무덤 조성을 위한 임시기구를 산릉도감이라 한다. 무덤 중에서도 군주의 무덤은 흔히 산에 비유됐으므로 산릉(山陵)이라 한 것이다.
정조의 무덤은 화성 건릉(健陵). 그 정자각은 정조가 죽은 지 두 달 정도가 지난 8월24일 주초를 놓는 정초(定礎)로 시작한다. 이어 9월6일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리더니 이튿날에는 벌써 서까래를 올린다. 사흘 뒤인 9월7일에는 기와를 올리기 시작해 10일에는 다 끝내 버린다. 정자각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6일이 걸린다.
우리 선조는 전통시대 건축물을 만드는데 10년을 썼는데 지금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니 하는 말 전부 거짓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건축은 신속성이 관건이었다.
이번 책에 대해 저자는 "정조가 죽기 직전부터 시작해 신주가 종묘에 봉안되어 상장례를 마칠 때까지 3년 동안 진행된 모든 과정을 담았다"고 하면서 특히 그에 등장하는 갖가지 "어려운 용어를 전거를 찾아 일일이 풀이해 전문연구자 및 일반인에게 제공하는 것 또한 이 책의 주요한 장점 중 하나"라고 자평했다.
특정한 국왕을 주제로 삼아 그의 죽음을 이처럼 자세히 정리한 연구성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저자 스스로 내세운 장점 또한 분명히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다만, 지나치게 문헌에만 함몰해 책에서 다루는 적지 않은 장례 관련 실물이 국립고궁박물관 등지에 있지만 이런 자료들을 충분히 활용치 못하고, 실제의 왕릉들과 충분히 비교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주며, 각종 용어 설명에서도 부족한 점 등이 간혹 보인다.
글항아리, 372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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