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맛보는 이주민의 손맛> ⑤이태원

편집부 / 2015-06-15 07:00:11
서아프리카로의 초대 '해피 홈'
브라질 바비큐의 매력 '코파카바나 그릴'
△ 아프리카 식당 '해피 홈'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이태원의 아프리카 식당 '해피 홈' 대표 메뉴. 나이지리아 출신 이주민이 운영하는 '해피 홈'은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 서아프리카 지역 음식을 전문으로 한다. 2015.6.15 kjhpress@yna.co.kr

<서울서 맛보는 이주민의 손맛> ⑤이태원

서아프리카로의 초대 '해피 홈'

브라질 바비큐의 매력 '코파카바나 그릴'



<※ 편집자 주 = 귀화자를 포함해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지난해 행정자치부 통계 기준 42만 명으로 국내 전체 외국인의 26%에 달합니다. 서울시 전체 인구가 대략 1천만 명이니 서울시민 100명 중 네 명은 외국인인 셈입니다. 날로 늘어가는 외국인은 거대도시 서울의 풍경을 바꾸고 있습니다. 곳곳에 이국의 식당이 생겨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이웃을 만나는 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도 이주민이 직접 꾸려가는 식당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삶의 현장'입니다. 연합뉴스는 건강한 다문화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와 협력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이주민의 과거와 현재가 담긴 맛집을 소개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길을 걷다 나와 다른 모습을 한 이방인을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서울 안의 외국, 이태원이다.

다양한 인종이 거리를 누비고, 이국적인 가게들이 곳곳에 숨은 이곳은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태원은 해방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외국 문화의 집결지가 됐고, 최근에는 경리단길을 중심으로 유행을 좇는 젊은이들의 명소로 떠올랐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인 만큼 이태원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는 그 어느 곳보다 다채롭다.

◇ 서아프리카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해피 홈'

해밀톤호텔 맞은편 뒷골목을 누비다 보면 빨간 간판의 아프리카 식당 '해피 홈'(HAPPY HOME)을 만날 수 있다.

상가 사이 건물 2층에 숨은 이곳은 이태원을 오가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사랑방과도 같은 곳이다.

10여 년 전 이태원파출소 뒤편에 있을 때부터 14개월 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이후에도 고향의 맛을 찾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지금의 사장인 나이지리아 출신 오조 에메카 마틴스(37) 씨도 가게를 드나들던 손님 중 하나였다.

그는 3년 전 가게를 사들인 후에도 '해피 홈'이란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인종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이름"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해피 홈'은 나이지리아·가나·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의 음식을 전문으로 한다. 이 지역의 음식은 강한 향과 맛이 특징이다.

'해피 홈'도 다양한 풍미의 요리를 선보인다.

호박씨 가루에 레드 팜오일, 후추, 쇠고기, 말린 생선 등을 넣어서 만든 에구시 수프(Egusi Soup)는 이곳의 대표 메뉴.

푸푸(fufu)는 쌀가루를 쪄서 만든 서아프리카인들의 주식으로 떡과 같은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주로 손으로 뜯어서 먹으며, 맛이 강한 수프 및 고기 요리와 잘 어울린다.

바나나와 비슷한 플랜틴(plantain) 튀김은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고구마처럼 부드러워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이밖에 시금치를 넣어 만든 채소 스튜(각종 재료를 넣어 푹 끓인 음식)와 우족으로 만든 수프 등도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마틴스 씨는 "고객의 90% 이상은 아프리카인이지만 호기심 많고 탐험가 정신이 있는 한국인들도 종종 찾아온다"고 소개했다.

10여 년 전 무역 사업을 위해 한국을 처음 찾은 마틴스 씨는 "무역을 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한국은 친숙한 나라"라며 머나먼 땅까지 오게 된 사연을 전했다.

이후 한국에 정착해 이태원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기도 한 그는 '해피 홈'을 끌어가면서 이전과는 다른 행복을 맛보고 있다.

가게에 손님이 오면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미소로 반기는 그에게 손님은 친구와도 같다.

"우리 식당에는 휴머니티가 있어요. 한국에서 아는 사람도 없고, 돈도 넉넉지 않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마치 집과 같은 곳이죠. 그들에게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는 "앞으로 한국 사람들에게도 서아프리카의 음식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 브라질 바비큐의 맛 '코파카바나 그릴'

아프리카부터 중동, 동남아시아까지 이태원의 글로벌 식당 목록에서 남미가 빠질 수 없다.

해밀톤호텔 뒤편 맛집 골목에 자리한 '코파카바나 그릴'(COPACABANA GRILL)은 7년째 이태원에서 브라질의 맛을 전하고 있다.

펠레부터 네이마르까지 축구 스타들의 사진으로 채워진 내부 인테리어부터 '축구의 나라' 브라질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3만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에 다양한 고기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서빙하는 방식부터 브라질식이다. 꼬챙이에 꽂아 구운 고깃덩어리인 슈하스코(Churrasco·브라질의 전통 바비큐)를 종업원이 손님들 앞에서 직접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다. 브라질에서는 이 같은 서빙 방식을 호디시오(rodizio)라고 부른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 마리아 조엘마 바티스타(37)-김종희(47) 씨 부부는 브라질의 맛과 스타일을 고집하며 '코파카바나 그릴'을 "브라질 사람들이 찾는 한국의 브라질 식당"으로 만들었다.

부부는 "고향의 맛을 찾는 브라질인뿐 아니라 다른 남미 사람들도 많이 들른다"고 전했다.

김 씨는 1996년 무역 일을 위해 브라질 상파울루를 찾았다가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다. 옷을 사러 들른 의상실에서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아내를 봤고, 호감을 느껴 데이트 신청을 한 것.

마리아 씨 역시 "만나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했고, 성격도 잘 맞았다"고 돌아봤다.

두 사람은 현지에서 2년간 교제하다 1998년 한국으로 넘어와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은 유창한 한국어를 자랑하는 마리아 씨는 "처음 한국에 올 때는 한국말을 전혀 못했다"며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이 '저는 마리아입니다'란 말을 처음 가르쳐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각자 다른 일을 하던 부부는 2008년 한남동에서 브라질 식당을 함께 열었다. 마리아 씨의 부모가 브라질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터라 식당 운영은 마리아 씨에게 낯선 일이 아니었다.

마리아 씨는 "원래 요리를 좋아했다"며 "브라질 식당이 있다면 브라질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한남동에서 브라질 가정식을 선보였던 부부는 1년 뒤 이태원으로 옮겨 그릴 음식에 집중했다.

"브라질 가정식은 그다지 대중적인 메뉴가 아니었어요. 고객층을 넓히기 위해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음식을 선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바비큐와 그릴 음식으로 바꿨어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뷔페식으로 한 것도 그때부터였죠."(김종희, 마리아)

'코파카바나 그릴'에서는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등 7종류의 부위별 고기와 브라질 콩 요리인 페이조아다(feijoada), 마카로니, 간단한 샐러드 등이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페이조아다는 강낭콩의 일종인 울타리콩을 하루 전날 물에 불린 뒤 2시간 이상 끓여서 돼지고기, 양파 등을 넣고 스튜처럼 만든다.

페이조아다에는 '이주민의 나라' 브라질의 역사가 담겨 있다. 원래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이 먹던 음식이지만 영양분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인까지 먹게 됐다고 한다.

마리아 씨는 "페이조아다는 한국의 김치와 같은 음식"이라며 "브라질 사람들은 주식으로 페이조아다를 다양하게 요리해서 밥, 감자튀김, 스테이크와 함께 한 접시에 담아서 먹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브라질의 맛을 전하는 이들 부부의 바람은 어린 아들(6)과 딸(3)을 건강하게 키우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식당을 지켜가는 것.

마리아 씨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상태로만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WEEKLY HOT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