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조각가 김윤신 "지금도 못할 일 없어…정신력이 중요"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국내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은 1983년 12월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한 달간 여행을 하다가 아예 이민을 결심했다.
조카가 거주하는 곳을 찾아간 그는 광활한 자연 속에서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 다양한 돌과 나무 같은 조각재료를 발견했다.
남미의 태양과 바람에서 자라난 나무들에 매혹돼 현지에 정착한 그가 올해 80세를 맞아 서울 서초구한원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있다.
12일 낮 서울 삼청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청바지에 운동화, 티셔츠에 얇은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1935년생인 그는 아르헨티나로 떠날 때 상명대 조소과 교수직을 던지고 낯선 땅으로 향했다고 한다.
80세인 그는 작품활동을 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살면서 어려움은 있었다"면서도 "작업하면서 슬럼프는 없었다"며 확신에 차 대답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 갈 당시 예술가냐, 교수의 길이냐를 결정했어야 했는데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시간적으로 여유롭게 작업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에도 눈뜨면 작업을 시작한다는 그는 스스로 "나는 엄청난 부자"라고 말했다.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부자여서 그렇단다.
그는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파리국립미술학교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고 5년 뒤 돌아와선 교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아르헨티나로 떠나게 됐다.
이날 그에게 현재까지 자신의 삶과 작품활동의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기도와 정신적인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정신을 놓아버리면 흐트러진다"며 "나는 웬만큼 아파서는 눕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8·15 광복, 한국전쟁 등 험한 세상을 거치다 보니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정신을 갖게 됐다. 후배 양성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 정신의 세계, 정신의 힘은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못할 것이 없다. 지금도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고, 눈을 감을 때까지 작업하다가 가고 싶다"면서 "작업을 안하고 전시회 준비를 하는 시간마저도 아까울 정도"라고 말했다.
200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개관한 '김윤신미술관'(관장 김란)은 남미에서 처음으로 한국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공간이다.
전시 도록에 실린 작가 인터뷰에서 그는 나무에 집중하는 이유로 "나무와 더불어 작업을 하다보면 마음이 순수해지는 걸 느낀다"며 "부드러워지고 순해지면서 느낌이 내가 아이처럼, 어떻게 보면 바보처럼 돼 버리고 욕심을 부리는 게 점점 없어진다"고 말했다.
'영혼의 노래, 김윤신 화업 60년'이라는 제목으로 7월8일까지 이어지는 그의 개인전에선 그의 연작인'합이합일'(合二合一), '분이분일'(分二分一)을 비롯한 평면, 입체, 설치 등 70여점이 전시된다.
☎ 02-588-5642.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