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지분 매입 헤지펀드, 아르헨 디폴트 일으킨 '백전노장'
거물 폴 싱어 이끄는 엘리엇 매니지먼트…'SK-소버린 사태' 재연 우려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제일모직[028260]과 삼성물산[000830] 합병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선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아르헨티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일으킨 '백전노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엘리엇의 삼성물산 지분 참여가 지난 2003년 SK그룹의 '소버린 사태'와 같은 장기간의 고강도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헤지펀드 업계 거물 폴 싱어가 1977년 창립해 현존하는 헤지펀드로서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간 연평균 14.6%의 높은 수익률을 꾸준히 내면서 현재 운용자산(AUM)이 약 260억 달러(약 28조8천억원)에 이르는 거대 헤지펀드로 성장했다.
엘리엇의 가장 유명한 투자 사례 중 하나는 작년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를 일으킨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01년 1천억 달러 규모의 디폴트를 선언한 이후 국제 채권단과 채무 구조조정 합의를 이뤘다.
채무의 약 71∼75%를 탕감해주는 합의안에 채권단 대다수가 참여했으나, 엘리엇은 합의에 불응해 다른 헤지펀드 한 곳과 함께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들은 액면가 13억3천만 달러의 아르헨티나 국채를 4천800만 달러가량의 헐값에 사들인 뒤 소송에서는 액면가 전액을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미국 법원이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르헨티나는 이미 채무조정에 합의한 채권단에도 전액을 상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기술적 디폴트로 내몰렸고 미국 법원 판결을 회피하기 위해 자국 은행을 통한 채무 우회 상환을 시도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처럼 기업 인수·합병(M&A) 거래에서 소액주주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문제를 제기해 더 높은 주가를 받아내는 것도 엘리엇이 자주 쓰는 투자 기법이다.
엘리엇은 지난 2003년에는 미국 P&G가 독일 웰라를 인수하면서 제시한 주가가 부당하다고 저지에 나섰고 수년간의 법적 분쟁을 거쳐 주가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2005년에도 미국 유통업체 샵코를 한 사모투자펀드(PEF)에 매각하는 거래에 반대해 자신들의 샵코 지분 가격을 주당 24달러에서 29달러로 올려서 받아냈다.
2006년에는 인력 컨설팅업체 아데코가 독일기업 DIS를 인수해 비상장사로 만들려는 계획에 맞선 끝에 지분 가격을 주당 54.5유로에서 113유로로 끌어올린 바 있다.
엘리엇을 이끄는 싱어 회장은 정치·사회적 이슈에도 적극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성애자를 아들로 둔 싱어는 작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하는 공화당 후보에게 기부하는 등 총 930만 달러의 자금을 공화당 측에 지원했다.
또 동성애자 차별을 금지하는 '고용차별금지법'의 의회 통과를 위해 공화당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작년 포브스에 따르면 싱어의 재산은 약 19억 달러(약 2조1천억원)로 평가됐다.
이날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지분 7.12%(1천112만5천927주)를 주당 6만3천500원, 총 7천65억원에 장내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경영 참가 목적'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별도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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