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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에서 노동계 관계자들이 '노동시장 구조개악' 중단을 요구하며 단상을 점거하고 있다. |
'노조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학계, "실효성 의문"
노동계 반발로 '줄소송 사태' 우려…'공무원 우선 적용'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학계 전문가들이 '노조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추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임금피크제 당사자인 노동계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다가 자칫 통상임금이나 연장근로 수당 논란처럼 '줄소송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이들은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도출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기업으로의 확산에 앞서 공무원부터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취업규칙 지침, 대기업 인사담당자도 우려 많아"
3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따르면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화 진단과 대안' 토론회 주제발표에서 임금피크제 추진을 둘러싼 논란을 다룬다.
조 교수는 주제발표문에서 "정부 주도의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은 국회 입법이 어려운 환경에서 우회전략으로 판단되지만, 실제 효과 측면에서는 법과 가이드라인의 충돌로 인사관리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밝혔다.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간주되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얻어야 해 임금피크제를 노조가 반대하면 도입하기 어렵다.
이에 정부는 사측의 대화 노력를 노조가 거부하면, 노조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취업규칙 지침을 마련키로 했다. 이는 노조의 반대에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면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는 법원 판례에 근거했다.
조 교수는 임금피크제 취업규칙 지침의 문제점으로 ▲ 예외적 판결의 보편화 ▲ 소송 사태 우려 ▲ 기업의 소극적 태도 등 3가지를 들었다.
우선,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법원 판례를 우리 사회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가이드라인으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조 교수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면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다는 법원의 판례는 해당 사건에만 적용되는 특정 판례"라며 "이를 각 사업장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가이드라인의 근간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라고 지적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의 무리한 적용으로 인해 줄소송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시했다.
조 교수는 "가이드라인은 노동계가 따르지 않아도 되는 권장 사항에 불과하다"며 "임금피크제를 추진하려고 근로기준법을 우회해 이를 무리하게 적용한다면, 통상임금이나 연장근로 수당 논란 때처럼 '줄소송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통상임금이나 연장근로 수당 논란 때도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있었지만 노동계가 이에 불복, 상위법인 근로기준법에 호소해 소송을 낸 결과 고용부의 지침을 뒤엎는 판결이 잇따랐던 것을 말한다.
실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할 기업에서도 호응은 크지 않다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조 교수는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취업규칙 지침의 실효성이 작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임금피크제를 일방적으로 도입할 경우 노조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큰데, 그러한 위험을 무릅쓸 기업은 많지 않다는 것이 인사담당자들의 얘기다"고 전했다.
◇ "임금피크제, 공무원부터 적용해 모범 보여야"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 구조개선과 사회적 대화' 주제발표에서 "정부의 구상대로 취업규칙 가이드라인을 추진하면,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의 반발을 불러 임금피크제보다 더 중요한 임금체계 개편 논의에 장애물을 조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 임금과 승진의 연공주의 타파,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격차 완화 등 중요한 논의들에서 노동계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해 노동시장 구조개혁 전반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배 연구위원은 민간기업의 도입 추진 이전에 공무원 조직이 모범적으로 임금피크제를 우선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공무원이 선도적으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면 민간기업에 임금피크제를 권할 명분을 쌓게 될 것"이라며 "공공부문도 내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전면 도입하는 만큼 공무원 조직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6급 이하 공무원의 정년은 57세였으나, 2008년 국가공무원법 개정으로 단계적으로 연장돼 2013년부터 정년 60세가 됐다.
배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현 정부가 마무리하기 힘든 장기 과제이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사회적 공론화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노동시장 개혁의 세계적인 성공 사례인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이나 독일의 '하르츠 개혁'도 논의 시작부터 합의까지 각각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노사정 대화를 지난해 시작한 만큼 우리도 여유를 갖고 끈기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배 연구위원은 "노동계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임금체계 유연성 증진 등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스스로 실천하면서 정부와 경영계에 요구해야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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