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명 '타이가'…환갑 맞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편집부 / 2015-06-02 16:22:23
유·무인 우주선 등 2천기 발사…역사 뒤안길로 사라지나?


암호명 '타이가'…환갑 맞은 바이코누르 우주기지

유·무인 우주선 등 2천기 발사…역사 뒤안길로 사라지나?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52개의 발사 설비와 34개의 기술센터, 16개 상설 육상관측소와 4개의 항공 관측소, 4개의 산소·질소 공장, 80㎿급 열 발전소, 2개의 비행장과 5개의 착륙장, 1개의 기상관측소 등등..

중앙아시아 북부 카자흐스탄의 카라간다 주(州)에 위치한 인류 최초의 우주기지 '바이코누르'의 위용이다. 현재 전세계 12~13개국이 로켓발사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유인 우주선을 발사한 곳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세곳 뿐이다. 이들 발사장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이 바이코누르 기지다.







바이코누르 기지가 2일로 환갑을 맞았다고 한다. 러시아 시사주간 '아르구멘트이 이 팍트이'(논거들과 사실들. 이하 A&F)가 2일자 인터넷판에 60살을 맞은 바이코누르의 영욕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바이코누르의 생일과 관련해서는 옛 소련이 비록 실패했지만 R-7로켓(대륙간탄도탄)을 처음 쏘아 올린 1957년 5월 15일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소련군 참모본부가 훈령을 통해 그 존재와 조직 등을 공식 인정한 1955년 6월 2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한다. 당시 명칭은 '제5 과학연구실험발사장'(NIIP)이었다.

소련이 바이코누르 기지를 건설하기로 한 건 미국과의 핵전쟁 우려 때문이었다.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소련과의 패권경쟁을 통해 옛소련 주변 지역에 군사기지들을 확충함에 따라 소련 역시 더욱 효과적인 대미 공격 수단이 필요했으며 이 목적에 부합한 것이 장거리 로켓, 즉 대륙간탄도탄이었고 이를 발사하기 위해 건설한 곳이 바이코누르 기지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54년 발사장 선정을 위한 정부위원회가 구성돼 ▲광활하되 농경지가 적고 주민이 별로 없는 곳 ▲로켓 등 화물 수송을 위한 철도가 있을 것 ▲식수와 기술용수로 사용될 담수가 풍부할 것 ▲로켓 발사장과 탄두 낙착지점(캄차트카 반도의 쿠라 발사장)간 거리가 7천km 이상일 것 등 최소 4가지 엄격한 조건에 따라 선정한 곳이 바이코누르 기지다.

적도와 가장 가까워 더 많은 화물(탄두)을 적재할 수 있고 연중 맑은 날이 가장 많은 곳이기 때문에 최적의 장소였지만 일반인 처지에서 보면 엄청 더운 날씨에 눈, 코, 입을 가득 채우는 모랫바람, 문명과의 괴리, 그리고 아무런 편의 시설도 없는, 더는 나쁠래야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장소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소련 당국은 지체할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각료위원회는 1955년 2월 12일 '제5 NIIP' 건설을 위한 공동 훈령을 채택했고 곧바로 기지 건설이 시작됐다. 당시 이 기지의 암호명은 '타이가(북부 유럽과 시베리아를 거쳐 오호츠크해에 이르는 지역의 대밀림)'.

이를 위해 앞서 그해 1월 공병대 1진이 현장에 도착해 콘크리트로 만든 공장과 각종 기초 설비공사를 끝낸 뒤 첫 번째 발사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발사장은 100만㎥의 흙과 3만㎥의 콘크리트를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가 설정됐고 공사는 단 4개월만에 성공적으로 완료됐다.

이후 발사장 조립 작업이 진행됐고 그해 5월 5일 극비리에 시험관용 주거단지가 건설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이 기지는 '타슈켄트-90', '자랴(새벽노을)', '즈베즈도그라드(별도시)', 레닌스크시(市) 등으로 불리다가 1995년부터 바이코누르로 고정됐다.

사실 이 기지가 들어선 곳의 원래 지명은 바이코누르가 아니라 '튜라탐'이었다고 한다. 이 기지 건설과 동시에 미국을 속이려고 인근 마을 바이코누르에 '분신'이 건립됐고 이곳을 발사장으로 오인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소련은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29분 만에 지구 상공을 일주해 전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한 1961년 4월 12일 당시에도 발사기지를 '바이코누르'라고 발표해 지금처럼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1957년 8월 U-2 정찰기를 통해 튜라탐에 우주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사실을 탐지했고 이후 소련이 해체된 1991년까지 서방 전문가들은 이 기지를 '튜라탐 발사장'으로 불렀다. 기지 건설과 운용이 워낙 비밀에 부쳐져 당시 이 기지에 근무했던 젊은 병사들도 뭘 하는 곳인지 몰랐다고 한다.

1, 2차 대전과 각종 전쟁에 참가해 중요한 군사작전에서 기술 책임을 맡았던 게오르기 슈브니코프 장군의 총 감독하에 1955년 말께 이곳에서 근무하던 인원은 군인 1천900명과 노동자 664명.

1956년 12월 제1 발사장 조립 작업이 완료되고 1차 시험발사 준비가 시작됐다. 그리고 마침내 1957년 5월 15일 R-7 로켓이 처음으로 발사됐다. 당시 기지에 근무하던 병력은 3천600명으로 증강됐다. 그러나 1차 발사는 실패로 끝났다. 발사직후 후미 부분에 화재가 발생해 400km를 난 뒤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그해 10월. 지구인은 R-7이 지구 궤도에 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보내온 호출신호에 환호했다. 최초의 인공위성이 올려진 것이다. 그때까지 만해도 소련 지도부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지만 스푸트니크가 야기한 강력한 반향으로 인해 이런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군사시설인 바이코누르 기지 역시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도 특화된 발사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바이코누르 발사장에서도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곳은 '가가린 발사장'으로도 유명한 제1 발사장이라고 한다. 각종 인공위성 등 600개 이상의 우주 장비가 발사됐고 31번 발사장에서는 200기 이상의 로켓이 지상을 박차고 오르는 등 현재까지 2천개에 가까운 인공위성과 우주 화물선, 유인 우주선 등이 바이코누르 기지에서 우주를 향했다.







사고도 적지 않았다. 1960년 10월24일 R-16 로켓 실험 당시 사고가 발생, 화재와 유독 가스로 소련의 초대 전략로켓군 사령관인 미트로판 네젤린을 포함해 78명이 숨졌고 그 3년 뒤에는 R-9 로켓 발사 준비단계에서 사고가 발생해 8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후 바이코누르 기지에서는 10월 24일에는 어떠한 발사도 이뤄지지 않는다. 로켓 기술과 우주 개발을 위해 당시 숨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기지의 명성도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급추락했다고 한다. 소련이 붕괴한 뒤 경제적 어려움으로 러시아의 우주개발 계획은 대폭 축소됐고 한때 최고 특권을 누리던 바이코누르 기지 근무자들도 하나둘 가족과 함께 기지를 떠나 많은 건물들이 황폐해지기도 했다. 기지의 법적 지위도 한때 불명확했다. 젊은 독립국 카자흐스탄은 독자적으로 바이코누르 기지를 운용할 능력이 없었고 자국 영토내에는 발사기지를 갖고 있지 않았던 러시아 역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바이코누르 기지는 결국 1994년 러시아에 장기임대 형식으로 임대됐고 러시아는 이를 위해 매년 1억 달러(약 1천100억원) 이상을 카자흐스탄에 지불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유지·보수 비용으로 매년 수십억 루블을 투입하고 있다고 한다. 2004년 1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은 바이코누르 기지 임대 계약 기간을 2050년까지로 연장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이와 별도로 현재 자국 영토인 아무르주(州)에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이 기지가 완공되면 '바이코누르' 기지는 소련-러시아 시절 역사의 뒤안길로 나앉게된다. 사실 바이코누르 기지는 이미 2009년 군병력이 철수하고 운영권 역시 군에서 '로스코스모스(러시아 우주청)'로 넘어가 사실상 민수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러시아 역시 군사용 목적의 장비들은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800km 떨어진 '플레세츠크' 기지에서 발사하고있다.







러시아는 여기에 더해 2030년까지 자체 상업용 발사의 90%를 '플레세츠크'와 '보스토치니'에서 소화하고 현재 75%에 이르는 바이코누르 기지에서의 상업용 발사는 10%로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맞서 카자흐스탄 정부는 2050년 이전에 바이코누르 기지를 독자적으로 운영할 준비를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유럽우주청과 다른 관심있는 국가들과의 공동 이용도 허용했다. 환갑을 맞은 바이코누르 기지가 어떻게 변모할 지 지켜보는것도흥미로울 것 같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WEEKLY HOT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