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지성의 커닝 사건이 씁쓸한 원동력"

편집부 / 2015-05-20 17:45:43
8일 막 올린 연극 '모범생들' 김태형 연출 인터뷰

"최고지성의 커닝 사건이 씁쓸한 원동력"

8일 막 올린 연극 '모범생들' 김태형 연출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연극 '모범생들'이 계속 공연되는 건 현실에 닿아있어서가 아닐까요. 서울대에서 일어난 집단 커닝사건만 해도 그렇고요"

연극 '모범생들'의 김태형 연출가는 20일 오후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모범생들'이 2007년 초연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끌며 재공연되는 이유를 이처럼 설명했다.

지난 8일 막을 올린 이 연극의 시대적 배경은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가 고등학교에 다닌 1992년. 특목고인 '대림외고'를 배경으로 성적을 높이기 위해, 한발 더 나아가 신분 상승을 위해 집단 커닝까지 저지르는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 소위 엘리트 계층의 비양심적 행위들을 꼬집는다.

2007년 초연된 이 작품은 이번으로 8번째 재공연된다.

김 연출은 "1992년이면 오래된 얘기일 수 있는데 놀랍게도 현재의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1990년대나 2015년 현재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벌어진 집단 커닝 사건이 이를 방증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 속 가상의 단체 커닝사건이 국내 최고 지성이라는 학교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이러한 현실이 바로 공연이 지속되는 씁쓸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동시에 성적과 외모, 집안 등 각종 기준으로도 상위 0.3% 안에 드는 반장 '서민영'과 충분히 '모범생'이지만 그릇된 열등감과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으로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되는 '김명준', 명준과 커닝을 모의하는 공부 파트너 '박수환', 학교에 잔디를 깔아주고 들어온 전학생 '안종태'를 통해 성적만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우리의 학교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대 위 학교 모습은 때로는 좀 지나치다 싶지만 불편할 만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도 한다.

김 연출가 본인의 경험도 일정 부분 반영됐다. 최근 연극계에서 재능있는 연출가로 손꼽히는 그는 실제 과학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이다.

그는 "저나 제 친구들의 모습에서 가져온 디테일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열심히 하는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 선택받은 소수라는 엘리트 의식, 동시에 자기만큼 잘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생기는 열등감, 이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을 경험해봤기에 극에 담아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KAIST를 중퇴한 그는 이제 그 '엘리트 코스'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어 편한 마음으로 연출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는 그 과정에서 한 발 뺀 사람이잖아요. 계속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좋은 직장에 가거나 학자의 길을 걷지도 않았고요. 시간이 흐르고 보니 경제적으로는 더 불리할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더 풍족합니다. 한때 성적에 매달리던 때의 자기반성이나 후회 같은 것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극에 등장하는 4명의 캐릭터 중 '김명준'을 자신과 가장 닮은 역할로 지목했다.

남들 눈에는 충분히 능력있는 학생이지만 월등히 잘하는 학급생 서민영을 보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과거의 자신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김 연출가는 "과거에 내 의지로 공부를 하기 보다 엄마 아빠, 주위 사람들, 혹은 사회가 원하고 요구하는걸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를 위해선 약간의 부정한 지식이나 행위가 괜찮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면서 "명준의 역할이 딱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현실을 꼬집는 동시에 자신이 겪은 변화를 다른 사람도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 큰 변화를 겪었고 이제는 남들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예전의 나 자신에 비해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학교생활이든 회사 생활이든 어디서든 지나칠정도로 노력하는 이들에게도 한번 변화를 받아들여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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