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작업, 동양적 색채 짙어
밴드 블러 "북한 특별한 곳, 사람들 주문에 걸린 것 같았죠"
16년 만에 완전체로 8집 발표…북한 여행기 담은 '평양' 수록
홍콩서 작업, 동양적 색채 짙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북한의 첫인상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모든 사람이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느껴졌죠. 그곳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특별한 곳이었어요. 확실히 저개발된 도시였지만 반대로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죠."(데이먼)
브릿팝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영국 밴드 블러(Blur)가 재결합 이후 낸 첫 앨범인 8집 '더 매직 윕'(The Magic Whip)에는 '평양'이란 곡이 수록돼 있다.
멤버 데이먼 알반(보컬)이 2013년 말 북한 방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다.
20일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를 한 블러의 데이먼은 평양을 여행한 소감을 이같이 전하며 "'평양'은 그곳에서 하루 반나절을 보내는 동안 느낀 경험을 담은 곡으로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제 딸에게 보내는 엽서 같은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데이먼은 "북한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돼 관심을 두게 됐다"며 "그 세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건지,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 여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길거리엔 어떤 광고판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고 전화기도 없는 곳이었어요. 여전히 들판에서 머리에 두건을 매고 밭일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죠."(데이먼)
데이먼은 BBC 라디오에서 북한 노래를 칭찬하고 북한 곡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경치도 좋고 살기도 좋네'란 곡을 소개한 적이 있다"며 "북한 사람들은 마치 주문에 걸려 있는 듯한데 음악은 그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 곡은 어떤 북한 영화의 음악 수록곡인 걸로 알고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아름답듯 이 곡도 각자의 방식으로 매우 아름답다"고 말했다.
또 다른 멤버 데이브 로운트리(드럼)는 "나는 아직 한 번도 북한에 가본 적이 없지만, 꼭 가보고 싶다"며 "북한 음악도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매우 흥미로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유엔(UN)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북한 방문을 추진 중이다. 충분한 지식이 없어 어떤 나라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나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8집은 이외에도 초기 멤버인 그레이엄 콕슨(기타)까지 합류해 1999년 '13' 이후 16년 만에 완전체로 낸 앨범이란 점에서 음악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블러는 5번의 '브릿 어워즈' 수상과 2번의 '머큐리 뮤직 어워드' 후보에 오르며 브릿팝 대표 밴드로 평가받았지만 2003년 7집 '싱크 탱크'(Think Tank) 이후 사실상 해체됐다. 탈퇴했던 그레이엄이 2008년 복귀하며 재결합해 공연 활동만 이어왔다.
데이브는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네 멤버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게 중요했다"며 "몇 번 공연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지켜보기로 했다. 함께 투어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게 됐고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내린 비가 멈추고 맑은 하늘에 별이 뜬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앨범 재킷에는 밴드명 '블러'의 한자 표기인 '모호'(模糊), 앨범 제목을 번역한 '마편'(魔鞭·마법의 채찍)을 적는 등 전반적으로 동양적인 색채가 짙다.
멤버들은 이 앨범이 2013년 5월 일본 '도쿄 록스 페스티벌'이 무산되면서 홍콩에서 예상보다 길게 체류할 당시 기초 작업을 시작한 덕이라고 설명했다.
데이브는 "투어 중 갑작스럽게 공연이 취소돼 모든 멤버들이 홍콩에서 5일간 머물렀다"며 "홍콩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고 이번 앨범으로 이어지게 됐다. 전혀 계획되지 않은 즉흥적인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 각 녹음 스튜디오마다 그 지역만의 사운드와 기운이 있는데 홍콩에서 작업해 당연히 동양적인 색채가 짙을 수밖에 없죠. 아직 기억나는 게 홍콩의 매우 낡은 스튜디오여서 녹음 장비가 좋지 않았어요. 블러 초기 때 작업한 영국의 매트릭스란 스튜디오와 비슷한 느낌이었죠. 후덥지근하고 답답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공간에 함께 처박혀 수많은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두드리게 됐죠."(데이먼)
그러나 당시의 작업물도 멤버들이 각자 갈 길을 가며 한동안 방치됐다. 그레이엄이 나서고 과거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 스티븐 스트리트가 참여하며 빛을 보게 됐다.
그레이엄은 "홍콩에서 작업한 추억을 회상해보니 즐겁고 자유롭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쳤던 기억이 났다"며 "그래서 데이먼에게 '그때 음악을 다시 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물었고 우리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해 스티븐을 데려왔다"고 말했다.
"작업은 주로 그레이엄이 추진했고 전 그냥 따랐어요. 그레이엄과 스티븐이 작업한 결과를 보여주는데 한순간에 감동받았죠. 솔직히 우리들의 마지막 공연으로 블러의 시기가 끝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랬기에 홍콩에서의 시간이 굉장히 소중했던 것 같아요. 당시 투어 중이어서 밴드의 호흡은 완벽했고 가사에도 솔직한 심정이 담겼죠. 오랜만에 '진짜 밴드' 같은 음악을 만들 수 있었어요."(데이먼)
앨범에는 왁자지껄한 홍콩의 거리에서 느낀 외로움을 노래한 오프닝 곡 '론섬 스트리트'(Lonesome Street), 블러 특유의 비트와 선율이 느껴지는 '고 아웃'(Go Out), 팝 트랙 '옹 옹'(Ong Ong) 등 12곡이 수록됐다.
'고 아웃'의 뮤직비디오는 홍콩 아티스트 토니 헝의 작품으로 동양 여성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모습이 담겨 독특하다.
1997년 내한한 적이 있는 멤버들은 한국에 대해서도 친근함을 나타냈다.
"K팝을 들어본 적이 있다"며 "영국 어린 친구들이 많이 듣는 음악인 걸로 안다. 한국 록 음악도 들어본 적이 있다. 가끔 한국 팬들이 한국 록 CD를 건네줘 컨템퍼러리 록부터 옛날 한국 록까지 들어봤다. 마지막으로 받은 한국 CD는 1970년대 록밴드의 음악이었다. 최근 들어 한국 음악이 세계 시장에서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 계획을 묻자 데이브는 "이번 투어에선 어렵겠지만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라며 "굉장히 즐거웠던 걸로 기억난다. 데이먼과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 당시 내한 공연 때 한국 도장에서 태권도 수업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한국 팬들이 오래 기다렸고 그간 젊은 세대의 다양한 팬들이 생겼다고 들었다. 꼭 다시 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현재 하는 투어 외에는 아무 생각도 계획도 하지 않으려 한다"며 "지금은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이고 하루하루를 즐기려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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