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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안북도 신의주와 중국 단동시를 연결하는 압록강철교(연합뉴스 자료사진) |
<5·24조치 5년> ③북한의 대중의존도 급격히 커져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은 오랫동안 비정상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북한의 주요 기업과 사업체를 군부 등 특권층이 관장하고 중국 정부나 기업의 대북투자는 권력층을 통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북중경협의 본격적인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이 터진 해인 2010년 이후 전개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잦은 방중과 함께 북중 관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했다.
지난 5년간 북중 교역액은 거의 매년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급격한 성장을 거듭했다.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11년 이미 80%를 돌파했다.
한국정부가 5·24 조치로 대북 투자를 급격히 줄이자 북한은 중국을 유일한 생존의 돌파구로 인식한 셈이다.
◇북중 교역·왕래, 2011년 폭발적 성장
20일 중국 세관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대북교역액은 1999년 3억 7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2007년까지도 10억 달러 대에 머물렀다.
2000년대 후반에는 상승추세를 보이며 2008년 20억 달러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북중 경협의 황금기는 '공교롭게도' 5·24 조치가 내려진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0년 북중교역액은 30억 달러 대를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63억 2천만달러로 1990년 이후 최대치의 증가폭을 보였다.
무엇보다 북한의 중국에 대한 지하자원과 인력자원 수출이 두드러졌다.
2008년 중국이 북한에서 수입한 광물은 248만t(1억9천6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2009년 373만3천t(2억6천100만달러), 2010년 479만9천t(4억300만달러)으로 증가했다. 2011년에는 1∼9월에만 842만t이 건너갔다.
중국을 방문한 북한주민의 수도 2010년까지 10만∼11만명 선에 머물다가 2011년 한해에만 5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이들 중 70% 정도가 기업가, 노동자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2013년 초 진행된 제3차 핵실험 이후 양측 관계가 냉각되기는 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교역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북중 교역액은 63억 9천만 달러로 사실상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최대 대북 수출품인 원유를 통계에서 제외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양국의 경제협력 수준은 여전히 황금기에 머물러 있다는 관측이 많다.
◇지지부진했던 특구사업도 5·24 이후 '탄력'
5·24 조치로 외자 확보에 비상이 걸린 북한은 중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유치에 발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사업이 나선경제특구 개발이다.
나선특구는 1991년 경제특구로 지정됐다. 북한은 총면적 621㎢에 달하는 이 자유경제무역을 2010년까지 3단계로 나눠 국제적인 자유무역항과 수출산업기지로 개발하기로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진척은 더뎠다.
5·24 조치를 전후해 북한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중국기업들이 이 사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2012년 여름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북중 양국이 30억 달러 규모의 나선개발 계획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돌았다. 이 계획에는 항만, 비행장, 철도건설, 화력발전소 건설 등이 포함됐다.
중국이 2020년까지 각종 인프라를 건설하고 그에 대한 사용권을 독점할 것이라는 말도 돌았다.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런 합의가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나진항 초장기 사용계약' 등은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북중 접경지역에 위치한 황금평을 양국이 경제특구로 공동개발한다는 이른바 '황금평 프로젝트' 역시 한국의 5·24 조치 이후 본격 추진된 사업 중 하나다.
황금평은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시와 접경한 북한 소유의 압록강 섬이다.
중국 투먼(圖們)과 함경북도 칠보산을 잇는 관광열차가 2011년 10월 북중관광철도 노선으로는 처음 개통되는 등 중국에서 출발해 북한 곳곳의 명승지를 여행하는 도로, 철도, 항공, 선박 관광코스가 지난 5년 사이 유례없이 증가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 더욱 가속될 것"
물론 양측의 경제협력은 '필요'가 낳은 것이다. 북한은 외자를 계속 끌어들여 주민을 먹여 살리고, 원유 등의 전략물자들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했다.
중국은 석탄, 철광석 등 북한의 지하자원과 항구를 이용해 낙후된 동북지역을 개발해야 했고 상승하는 자국내 노동비용을 북한의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양국의 경제협력이 2010년 들어 '북한정권에 대한 생존권 보장'이라는 일방적 흐름에서 '윈윈구조'로 변화했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지나친 대중 의존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종속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결국 대중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킨 배경에는 분명 5·24조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은 북중 경협의 상징으로 통했던 장성택을 처형하고 지하자원의 '해외유출'에 대해 제동을 걸며 지나친 중국 편중 행보에 스스로 경계음을 발신하기도 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정상적인 교역이 불가능한 북한으로서는 중국이 아무리 핵개발을 포기하라며 압박을 가해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신압록대교가 개통되면 대중 의존도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북한 신의주와 단둥을 연결하는 신압록강 대교는 중국이 전체 사업비 22억 2천만 위안(약 3천700억원)을 부담해 사실상 건설을 완료했지만 북한 측이 대교 연결 지점에 통관시설과 연결도로를 갖추지 못해 개통식이 연기됐다.
북중경협의 확대가 사실상 남북경협을 대체하는 결과로 이어져 온 만큼, 북한의 지나친 대중 의존은 장기적으로 남북통합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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