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담한' 전 국방부 간부…3캐럿 귀고리에 악어백
법원, 사기·횡령 등 12개 혐의 중 8개 인정…'징역 5년'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에서 러시아는 175개국 가운데 136위를 차지했다. 2012년 133위였다가 2013년의 127위에서 더 미끄러진 것이다. 그만큼 부패가 만연하며 사그라지지 않고 있음을 반영한 결과다.
이런 부정부패의 일단을 짐작케해주는 사건으로 러시아가 다시 떠들썩한 것 같다. 금발의 한 전직 국방부 여성 관리의 해묵은 부정부패 사건이 발단이다. 사기와 착복(횡령), 권력남용, 연수 명목의 관광여행 등 무려 12가지 혐의를 받는 이 전직 관리에게 고작 징역 5년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인 역시 3캐럿 짜리 다이아몬드 귀고리에 고급 악어 가방까지 버젓이 들고 자신의 선고공판에 출두했다.
경미한 사안도 아니다. 2012년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당시 국방장관의 해임까지 몰고 온국방부 산하의 자산 관리 회사인 '오보론세르비스(국방서비스)' 횡령 사건이 그 중심이다.
주인공은 국방부 자산관리국장이었던 예브게니야 바실리예바. '오보론세르비스'를 통해 국방부의 모든 부동산 거래를 직접 지휘했던 인물로, 모스크바 프레스넨스키법원은 지난 8일 사기와 착복(횡령) 혐의를 인정해 그에게 징역 5년과 2억1천550만 루블(약 47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러시아 시사주간 '아르구멘트이 이 팍트이'(논거들과 사실들) 13일자 인터넷판이 전한 이번 사안을보면 혀를 두를 정도다. 대표적인 사례는 모스크바 중심가인 스몰렌스크 불바르에 있는 우주선 발사장 재건 사업 전담 방산연구소인 '31-GPISS' 사무실과 관련된 것으로, 바실리예바와 그의 팀은 실거래 가격이 20억 루블(약 435억 원) 이상인 이 사무실을 16억 루블(348억 원)에 팔았다. 역시 실제 가치가 20억 루블 이상으로 평가되는 연구소는 1억4천200만 루블(30억9천만 원)에 매각됐다.
연구소와 사무실 구매인은 동일인으로, 이 거래 후 사무실은 다시 31-GPISS에 1억2천만 루블(26억2천만 원)에 임대됐다. 이 사무실 거래 서류에는 세르듀코프 당시 국방장관의 서명이 들어갔다. 31-GPISS는 국방부 산하 기관으로, 바실리예바가 이사장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수상쩍은 거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는 대신 바실리예바에게 사무실 매각 중개수수료 착복 혐의와 돈세탁 혐의 등만 인정했다고 한다. 당초 30억 루블(654억 원)로 추산됐던 피해액도 대폭 줄었고 세르듀코프 장관 역시 면책됐다. "바실리예바가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아나톨리 세르듀코프와의 개인적 관계를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국방부 간부가 장관을 기만한 것으로, 세르듀코프는 바실리예바의 범죄행위를 전혀 몰랐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수사 과정에서 바실리예바 전 국장에게서 예술품과 귀금속 장식품, 유명 메이커 시계들, 부동산 등 4억5천만 루블(98억 원) 이상에 달하는 자산이 압류됐다고 한다. 벌금을 내고도 남는 액수로, 그가 선고가 이뤄진 뒤 변호사에게 넘긴 3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각각 박힌 귀고리는 제외하고다.
바실리예바 전 국장은 2.5년을 가택 연금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형기의 절반을 보낸 셈이며 가석방 도 허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변호사인 하산 알리 보로코프는 "스스로 무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끝까지, 최고 법원까지 가서라도 무죄를 인정받는 법"이라면서 항소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여기에 더해 바실리예바 전 국장이 최종 확정판결 때까지 가택연금 상태에 계속 있을 수 있도록 형집행정지 소송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A&F는 항소심에 대략 5개월 가량 걸린다면서 바실리예바 전 국장이 한동안 모스크바 중심부의 호화로운 아파트에 계속 머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바실리예바 전 국장이 훨씬 큰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바실리예바 전 국장에 대한 주요 수사 상황
- 2012년 10월 25일 = 오전 모스크바 몰로츠느이가(街)에 위치한 바실리예바 전 국장 집에 대한 압수수색 실시. 당시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국방장관도 바실리예바와 함께 집안에서 실내용 슬리퍼를 신은 모습으로 적발됨. 300만 루블(6천543만 원)의 현금과 골동품, 수십종의 그림, 상당량의 귀금속과 장신구들 압류.
- 2012년 11월 23일 ='대형 사기'죄로 정식 피소. 연방보안국(FSB) 요원들, 바실리예바 전 국장체포. 법원, 가택연금 결정.
- 2013년 10월 4일 = 사기, 범죄 자산 은닉, 직권 오·남용 등 12개 혐의로 최종 피소. 법률가들, 최고 징역 12년형 전망.
- 2013년 11월 28일 = 세르듀코프 전 국방 장관, 직무태만 혐의로 정식 피소.
- 2014년 6월 9일 = 세르듀코프 전 장관에 대한 형집행 정지 사실 알려짐. '조국 수호자'로 인정돼 사면됨.
- 2014년 6월 16일 = 바실리예바 전 국장의 4억5천만 루블에 상당하는 자산 정식 압류. 현금 350만 루블, 1억2천700만 루블(27억7천만 원) 상당의 그림들과 귀금속과 장식품, 보석, 유명 메이커 시계 등 포함.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재 6개 부동산과 2천500만 루블(5억4천600만 원)이 입금된 은행 계좌, 그리고 3억 루블(65억6천만 원)이 입금된 바실리예바 회사 명의 계좌도 압류.
- 2014년 7월 1일 = 모스크바 프레스넨스키 법원, 심리 시작.
- 2015년 5월 8일 = 법원 12개 혐의 중 사기, 횡령 등 8개 혐의 인정. 징역 5년·벌금 2억1천550만 루블(약 47억원) 선고.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