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세상칼럼] "가슴으로 낳은 82명…제겐 꽃 같은 아기들이죠"

이채봉 기자 / 2015-05-08 18:45:15
'입양의 날' 맞아 국민훈장 받는 위탁모 송일례 씨
△ 국민훈장 받는 위탁모 송일례 씨 11일 '입양의 날'을 맞아 국민훈장 받는 위탁모 송일례 씨. 송씨는 지난 23년 동안 82명의 위탁 아동을 길러 국내외로 입양을 보냈다. 2015.5.8. << 한민족뉴스부 기사 참조 >>

[부자동네타임즈 이채봉 기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의 한 아파트. 60대 노부부가 사는 곳이지만 집안은 온통 '뽀로로' 유모차와 젖병으로 가득 찼다.

손주들도 이미 초등학생으로 컸는데 돌쟁이 육아 용품이 집안을 채운 사연은 뭘까.

23년 동안 82명의 아기를 길러 입양을 보낸 위탁모 송일례(64) 씨의 '둥지'이기 때문이다.

송씨는 9일 열리는 제10회 입양의 날(5월 11일) 기념식에서 그 공을 인정받아 국민훈장을 받는다.

송씨는 8일 부자동네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더 훌륭한 위탁모도 많은데 제가 큰 상을 받게 돼 쑥스럽다"며 웃어 보였다.

위탁모는 친가족이 키우지 못하는 아기를 맡아 친부모처럼 키우다 입양 가정이 확정되면 떠나 보낸다.

친자식 키우기도 힘든 세상이라는데 송씨가 무려 82명의 아기에게 엄마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그냥 천성인 것 같아요. 저도 힘든 때가 있긴 하죠. 그런데 아기가 한번 웃으면 그런 생각이 싹 없어져요. 집안에 꽃이 피는 거죠. 이보다 더 예쁜 꽃은 없겠지 싶어요."

송 씨가 처음 위탁모를 하게 된 건 35살이던 1985년이다.

"옆집에서 늘 아기 노는 소리가 들리기에 알아봤죠. 위탁모라는 게 있다는 거예요. 당장 달려갔죠(웃음). 그날로 위탁모 신청을 했어요. 좋은 일이기도 했고, 저도 남편도 아기를 워낙 좋아해서요."

송 씨의 삶은 그 이후로 크게 달라졌다. 집안은 늘 육아 용품으로 가득 찼고, 뛰어노는 아기 때문에 층간 소음으로 항의를 받아 이사도 다녀야 했다.

건강이 안 좋아져 안면 마비를 겪기도 했고, 친목회 같은 모임에 참석하기 어려워 친구도 줄었다.

그런데도 건강 문제로 잠시 쉰 기간을 빼면 23년 동안 한결같이 아기들을 돌봤다.

"몸이 힘들어서 잠깐 쉬어야 했는데 그리움이 막 생기더라고요. 아기들이 그렇게 그립다니…. 그 길로 다시 찾아가 아기를 돌보게 된 이후로는 쉰 적이 없죠. 제가 건강한 날까지 계속하고 싶어요."

송 씨는 특히 심장기형, 알바니즘(백피증), 구순구개열 등을 앓는 장애 아동도 헌신적으로 돌봤다는 게 그가 속한 동방사회복지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정작 송 씨는 "크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기들은 제게 다 똑같아요. 한 명 한 명 얼굴도 성격도 다른 것처럼 하나의 인격체니까요. 나한테 오게 됐으니 잘 돌보자고 생각할 뿐이죠."

아기들은 송 씨의 품에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지내다 국내외로 입양된다. 가장 큰 보람을 느낀 때는 언제일까.

"하루하루 즐거운 순간이 많긴 한데…. 미국이나 호주로 갔던 아기들이 청소년으로 자라서 저를 찾아오면 가슴이 벅차요. '외국 부모들이 참 잘 키웠네' 생각하죠. 애들이 영어를 써서 말은 잘 안 통하지만…(웃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외로 입양을 허가받은 아이는 1천172명에 달한다. 전년보다 250명 늘었다.

인터뷰 내내 우리네 엄마의 모습 그대로이던 송 씨의 온화한 표정도 입양 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할 땐 단호하게 변했다.

"입양특례법(2012년 8월 시행) 말이죠, 그걸 좀 고쳐야 됩니다. 출생신고도 어렵고, 법원 허가도 기다려야 되니까 아기들이 오히려 입양을 못 가요. 아니면 미혼모에게 지원금을 더 줘야죠. 그러면 친엄마가 직접 키울 수 있을 텐데…. 장관님께 건의하면 될까요?"

어느새 송 씨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지난해 미국으로 입양 보낸 네 살배기 지훈(가명)이가 생각나서다.

"지훈이는 40개월 넘게 키웠어요. 입양 허가가 계속 미뤄져서요. 네 살이면 많이 커서 저를 당연히 엄마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국에 가려니 애가 얼마나 혼란스럽겠어요? 어른인 저도 가슴이 찢어졌는데…. 아직도 몸 한군데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아요. 입양 절차를 좀 바꿔야 해요. 지훈이처럼 너무 늦은 나이에 입양 가는 아이가 없도록요."

지금 송 씨 곁에는 돌이 갓 지난 수민(가명)이가 있다. 송 씨에겐 가슴으로 낳은 83번째 아기다.

"수민이도 얼마 전에 입양 가정이 결정됐어요. 미국으로 가게 될 것 같아요. 헤어질 날요? 미리 걱정하지 않는데…. 지금은 제가 엄마니까요."

송 씨를 만난 8일은 이 땅의 부모가 가슴에 카네이션을 다는 어버이날이기도 했다.

송 씨는 "친자식과 손주들한테는 벌써 카네이션을 받았다"면서 곁에 있던 수민이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는 "수민이는 그 자체로 꽃 한송이"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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