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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0월 27일 자위대 열병식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AP=연합뉴스DB) |
<동북아 외교전쟁> ④일본 사죄않고 폭주…종착지는 보통국가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은 보수·우익 세력을 중심으로 지지 기반을 확고히 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독주하면서 동북아시아의 갈등과 긴장을 키우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대표되는 역사 인식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을 조장·방조하며 한국·중국과의 사이에서 불협화음을 유발하고 있다.
일본은 국제 정세를 이유로 안전보장 체제를 정비해 군대를 보유하고 무력을 행사하는 보통 국가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된다.
◇ 야스쿠니 참배, 무라야마담화 무력화로 역사문제 도발 = 2012년 12월 정권을 탈환한 아베 총리는 이른바 '자학사관'에 치우친 교육 중단,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 수정 등을 내세우며 일본 사회가 1990년대 이후 어렵게 쌓아온 반성과 사죄의 역사 인식에 상처를 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취임 1년째를 맞은 2013년 12월 26일 일본의 현직 총리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이후 약 7년 만에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해 전후 질서를 부정한다는 의심을 샀다.
아베 총리는 1차 집권기인 2007년 3월에 이어 2013년 10월에도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군,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것과 같은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하는 등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관한 일본 정부 책임에 덧칠하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고노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 간에 면밀한 문구 조정이 있었다는 취지의 검증 결과를 발표해 고노담화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을 샀다.
전후 70년을 맞이해 새로운 역사 인식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는 뜻을 내비쳐 온 아베 총리는 올해 8월 새 담화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村山)담화마저 무력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무라야마담화를 계승하고 있다는 발언을 반복할 뿐 그 핵심인 '식민지배와 침략',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을 그간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최근 반둥회의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는 '반성', '후회'(remorse) 등을 단어를 언급하는 데 그쳤다.
여기에는 독일처럼 자국의 가해행위를 명확히 하고 이를 사죄하기보다는 모호한 반성과 전후 국제 사회 공헌 등을 내세워 역사 문제를 대충 매듭짓고 넘어가겠다는 전략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아베 총리의 연설에 관해 '책임이 일본 측에 있다는 것을 매우 명확히 했다'고 평가하는 등 일본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인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 등 23개 시설에 대해 세계 유산 등록을 권고한 것은 일본이 외교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역사 인식마저 입맛에 맞게 바꿀 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밖에 아베 정권 하에서는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이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트스'라고 하거나 '일본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령하고 있다'는 기술이 초중등 교과서에 보편화하는 등 역사인식 및 영토에 관한 도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집단자위권 행사 현실화, 최종 목표는 개헌·보통국가화 = 강한 일본, 자랑스러운 일본을 만들겠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아베 정권의 퇴행적인 역사 인식은 외교·안보 면에서는 전후 체제를 벗어나 보통 국가를 만드는 작업에 집중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필생의 과업'으로 규정했으며 정권 출범 후 집단자위권 구상을 공론화해 무력행사와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에 대한 이견에 불을 지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점점 커지고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를 둘러싸고 갈등 중인 중국이 해양 진출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안전보장 틀로는 국민을 지킬 수 없다는 주장이 헌법해석 변경과 18년 만의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이어졌다.
일본 정부는 중동의 해상 교통로가 기뢰로 봉쇄돼 원유 공급이 차단됐다면 자위대를 파견해 이를 제거하겠다며 필요에 따라 자위대를 세계 어느 곳에라도 보낼 수 있다는 인식을 공식화하고 있다.
또 자국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면 탄도 미사일을 요격해 미군 장비를 보호하거나 선박 검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개입 가능성을 확대했다.
일본 내에서는 이런 시도가 입헌주의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으나 의회를 장악한 아베 정권은 이번 정기 국회 중에 관련 입법을 완료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줄어드는 국방 예산 때문에 자력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미국은 아베 정권이 표방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지지함으로써 일본의 재무장에 힘을 싣고 있다.
아베 정권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은 헌법 9조 수정이나 개헌에 대한 반대가 많지만, 정권 관계자는 '시대의 변화에 맞는 헌법'을 목표로 단계적으로 개헌해 거부감을 줄인다는 구상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헌법 9조를 변경·수정하는 경우 자위대가 국방군 등 사실상 군대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으며 일본은 자금력을 앞세운 군비 확장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군사 대국의 길을 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일정 부분 중국의 국방비 확장을 명분으로 삼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전후 체제 탈피 과정에서 동북아시아의 긴장 고조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아베 총리는 올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와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거쳐 정권의 기반을 재생산하는 가운데 이런 시나리오를 현실화할 것으로 보이며 일본 여론의 움직임과 야당 및 시민운동 세력의 반대 등이 이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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