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이고 유연한 전략 요구…"전략적으로 수정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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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AP=연합뉴스 자료사진) |
<동북아 외교전쟁> ①'위기다 vs 아니다'…한국외교 어디로
日역주행·미일 신밀월·中실용외교…"동북아, 구조적 변화"
능동적이고 유연한 전략 요구…"전략적으로 수정 검토해야"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 한국 외교가 뭇매를 맞고 있다.
밀려드는 거센 도전에 능동적, 전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나기식 비판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최대 시련에 접어든 모습이다.
외교·안보 분야는 박근혜 정부 들어 그동안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과거사를 둘러싼 일본과의 외교전과 한일관계 장기악화, 미일동맹의 급격한 '쏠림현상',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논란과 중국 주도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등의 과정에서 난맥상이 잇따라 노출되면서 난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외교가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에서부터 '외교전략 부재', '먹통 외교', '외교 고립', '외교 실패' 등 비판의 수위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외교진용에 대한 인적교체 주장이 정치권, 특히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일련의 상황은 우리 외교가 처한 엄중한 현실을 방증한다.
◇격랑의 동북아…외교·안보지형 출렁 = 미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이 국익 극대화를 위해 대립과 때로는 합종연횡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복잡다단한 고차원 방정식이 우리 외교의 숙제로 던져진 상황이다.
무엇보다 미중 대립구도가 더욱 첨예화됐다.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전략을 채택한 미국은 일본과의 밀착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견제 고삐를 바짝 죄고 있고, 이에 맞서 '대국굴기'(대국으로 우뚝 서다)와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운 중국은 AIIB 창설을 성공적으로 주도하며 속된 말로 미국과 '맞짱'을 뜨고 있다.
분위기에 편승한 일본은 전범국가에서 보통국가로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지난해 헌법 해석변경을 통해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한 데 이어 이를 바탕으로 자위대를 세계 어디에든 투사할 수 있고, 특히 중일 영유권 갈등지역인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분쟁시 안보협력 등을 골자로 하는 미일 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확정을 통해 미일 신(新) 밀월시대를 열었다.
진정한 과거사 반성을 외면하는 일본이 유사시 우리 정부의 동의 없이 한반도에 무단 진출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다.
미일동맹 강화는 북핵 대응 등을 위한 한미일 3각 공조 차원에서 부인할 수 없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 정부도 미일 관계와 한미동맹을 '제로섬 시각'에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미일간 신밀월시대 개막이 '양날의 칼'이라는데 우려가 있다.
미일간 '찰떡공조'로 중국과의 대립이 더욱 격화되는 상황은 우리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시나리오다.
우리 정부가 포괄적 전략동맹인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미일 대 중국' 간 대립 격화는 우리가 설 공간을 더욱 협소하게 만들 뿐이다.
최근 사드 한반도 배치 논란과 AIIB 가입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것이 그런 우려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역사수정주의를 내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마이 웨이' 역주행으로 한일관계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고, 북핵 문제도 북한의 핵 능력만 고도화되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더군다나 미일관계가 강화되면서 우리 한국의 소외 우려도 나온다.
'과거사 물타기'로 끝난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 이후 일본의 과거사 외면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거나, 미국 역시 한미일 안보협력를 강조하며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위한 역할을 주문하는 우리 정부의 목소리에 귀를 닫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일 대 중국' 간 대립각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과거사에 대해 우리 정부와 공동보조를 취해왔던 중국은 일본에 대해 실용적 접근으로 돌아선 모양새다.
최근 반둥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베 총리와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하고 관계개선을 모색하기로 함으로써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못한 우리의 상황과 대비된다.
◇한국외교 어디에…"남북관계부터 뚫어야" = 동북아를 둘러싼 주변국의 이 같은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외교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가 구조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면서 "미·중·일·러 등은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며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는 반면에 우리는 비전이나 실천전략 부재 등 총체적 문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주변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정착과 통일기반 조성'을 주요 외교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그러나 '레토릭'만 있고 전략과 리더십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외교·안보전략을 놓고 외교부는 물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아우르는 정책조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 원칙에 너무 치우쳐 유연성과 탄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 정부는 한일관계에서 과거사 문제와 안보·경제 등을 분리하는 투트랙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위안부 문제의 진전이 사실상 전제조건화돼 있다.
대북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최근 민간교류 확대 등 관계회복을 위한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5·24조치라는 중대한 걸림돌에 가로막혀 있다.
문제 해결의 고리를 남북관계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남북관계가 막힌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적 공간은 협소할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 개선을 지렛대로 미중일 등 주변국에 할 말은 하고 국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대립국면의 남북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외교가 할 말을 하지 못한다"면서 "외교 위기 극복을 위한 첫 조치는 남북관계 정상화"라고 지적했다.
◇현실인식 괴리…"위기를 모르는 게 심각한 위기" vs "과도한 해석" = 또 다른 논란은 이 같은 비판적 시각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차가 크다는 점이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외교 고립'이나 '외교전략 부재' 등에 대한 비판에 "과도한 해석",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며 적극 반박했다. 그는 사드와 AIIB 논란 당시에도 미중 사이에서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외교부는 특히 아베 총리의 미 의회연설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과거사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저변을 넓혔다고 항변하고 있다.
미국 의회나 미일 언론이 아베 총리 비판에 가세하고, 세계적 역사학자 187명이 6일 아베 총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촉구한 집단성명을 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의 나름 성과라는 평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특히 한일관계나 남북관계에서 일본이나 북측이 원인을 제공하고 책임이 더 큰데 우리 정부를 너무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경원(새누리당)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지난 4일 외통위 회의에서 "외교정책 성공·실패를 판단함에 있어서 국민 자존감과 정서는 매우 중요한 잣대인데, 지금 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외교정책이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딱딱하지 않나 하는 것"이라면서 "국익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수정할 것이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 위원장은 "전략적 모호성 뒤에 숨어서 중요한 판단을 미룬 것이 지금 외교부에 대한 비판을 초래하지 않았나 지적하고 싶다"면서 "역사 문제를 다룰 때도 시기와 방법 등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있다"고 꼬집었다.
당 대표를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의원도 "위기가 위기라는 상태라는 것으로 모르는 위기가 정말 심각한 위기"라면서 우리 정부의 인식이 안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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