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유럽국장 등 "채무 경감·추가 긴축 중단"
그리스에 대한 채권단의 조치 타당성 논란
IMF 출신들 "미봉책 그만, 근본대책 필요"
전 유럽국장 등 "채무 경감·추가 긴축 중단"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구제금융 체제 5년을 맞은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의 최근 구제금융 협상이 최종 단계로 접어든 가운데 미봉책이 아닌 그리스 위기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특히 채권단을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출신의 여러 인사들도 그리스는 개혁 실시로, 채권단은 상당한 채무 경감과 추가 긴축 중단으로 타협해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우선 그리스의 국가채무가 자력 상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채무의 상당 부분 탕감 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그리스 정부 지출을 30% 가까이 줄이는 엄청난 긴축에도 불황 심화로 채무 부담이 오히려 늘고 있어 채무 경감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2011년∼2014년 IMF 유럽국장으로서 그리스 구제금융을 직접 지휘한 레자 모가담 현 모건스탠리 부회장은 지난 1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그리스 정부가 개혁을 실시하면 채무의 절반을 탕감해줘야 한다고 촉구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가 대규모의 재정 구조조정 등 이미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치렀지만,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에 비해 오히려 늘어 성과는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또 당장 부채 탕감이 어려울 경우 부채를 민영화될 국유 은행·기업의 주식으로 출자전환해 채무를 줄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아쇼카 모디 전 IMF 유럽담당 부국장도 최근 유럽 대표 싱크탱크인 브뤼겔을 통해 발표한 칼럼에서 2010년 구제금융 당시 채무 탕감이 없었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시 몇몇 IMF 이사들을 포함한 다수 전문가들이 채무 조정으로 민간 채권자들도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IMF 등은 민간 채권자에 채무 전액을 갚도록 그리스에 자금을 지원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모디 전 부국장은 밝혔다.
카를 오토 � 전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 총재(재임 1980∼1991)도 2010년 당시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뷰에서 그리스 구제금융이 사실은 채권자인 독일·프랑스 은행에 대한 위장된 구제금융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발생하면 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자에게 마구 돈을 빌려준 채권자도 손실을 진다는 경제 원칙이 그리스 구제금융에서는 무시됐다는 것이다.
마틴 울프 FT 수석경제논설위원은 최근 그리스 관련 칼럼에서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현명하게 돈을 빌려줄 책임이 있다"며 "'멍청한' 채권자는 돈을 잃기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기초재정수지(국채 원리금 상환을 제외한 재정수지) 흑자를 국내총생산(GDP)의 4.5%로 대폭 늘리라는 국제 채권단의 추가 긴축 요구도 거센 비판 대상이다.
이 같은 흑자 목표치는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는 무리한 수준이라고 모디 전 IMF 부국장,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주립대 교수 등은 평가했다.
피터 도일 전 IMF 유럽담당 선임 이코노미스트도 FT 칼럼에서 "제정신을 가진 능숙한 거시경제학자라면 그리스 같은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4.5%라는 흑자 목표치를 고집하지 않겠지만, IMF는 정확히 그렇게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모가담 전 IMF 국장도 이 같은 추가 긴축 요구가 "사회적 통합을 위협하고 경제 회복 희망을 파괴할 것"이라며 "흑자 목표치를 절반으로 낮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4.5% 흑자 목표치를 달성하면 GDP는 약 8%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모디 전 IMF 부국장은 중요한 것은 그리스가 더 깊은 불황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나, 국제 채권단이 요구하는 개혁 중 "일부는 불행하게도 수요를 약화시켜 실제로는 악순환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울프 FT 수석경제논설위원은 마치 채무 상환이 가능할 것처럼 가장하면서 만기만 늘려주는 그간의 그리스 구제금융 방식은 "편리하지만 문제를 뒤로 미루기만 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모가담 전 IMF 국장은 "이전 (그리스) 정부들이 수년 동안에도 할 수 없었던 방대하고 포괄적인 개혁 조치를 수 주 안에 실행하라고 요구한다"며 채권단의 '조급증'을 비판했다.
그는 대신 그리스가 우선 몇 가지 핵심 개혁 조치를 실행하면 채권단은 자금을 지원하고 양측이 향후 2∼3년간의 개혁 프로그램에 합의하는 단계적 접근법을 제안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