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구제금융 5년, GDP 25% 감소…"재앙수준 불황"
"긴축에만 주력, 경제회복 실패" 평가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그리스가 지난 5년간의 구제금융 체제 동안 정부 지출을 약 30% 줄이는 구조조정을 했지만 채무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2010년 5월 초 구제금융 지원 합의로 시작된 그리스 구제금융 체제가 경제 불황을 심화시켜 경제 회복은 물론 채무 상환마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유럽통계청(유로스타트)과 그리스 통계청 등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 지출은 지난 2011년 1천122억 유로(약 135조원)에서 작년 884억 유로로 21.25% 감소했다.
구제금융 직전인 2009년(1천247억 유로)과 비교하면 정부 지출 감소폭은 29.16%에 이른다.
이에 따라 재정적자 규모는 2011년 국내총생산(GDP)의 10.2%에서 작년 3.5%로 줄었다.
특히 정부 채무상환 능력의 기준이 되는 기초재정수지(국채 원리금 상환을 제외한 재정수지)는 작년 GDP의 0.4% 흑자로 전환하는데 성공해 2009년 이후 약 12%포인트 개선됐다.
인건비도 경기 하락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각종 개혁조치 등으로 2010∼2013년 약 25% 하락했다.
이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그리스 국가채무는 2011년 3천560억 유로에서 2012년 채무 조정 등을 거쳐 작년 3천171억 유로로 10.92% 감소했다.
따라서 지난 5년간 그리스는 엄청난 수준의 구조조정을 했다는 평가가 많다.
2011년∼2014년 IMF 유럽국장으로서 그리스 구제금융을 지휘한 레자 모가담 현 모건스탠리 부회장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그리스가 "막대한 재정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치렀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긴축에도 채무 부담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채무 규모는 2011년 171.3%에서 2012년 채무 조정으로 156.9%까지 하락했다가 작년 177.1%로 반등했다.
이는 혹독한 불황으로 GDP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그리스 GDP는 2009년 2천374억 유로에서 작년 1천791억 유로로 24.58% 급감했다.
이 기간 실질 GDP 성장률은 2010년 -5.4%, 2011년 -8.9%, 2012년 -6.6%, 2013년 -3.9%로 2008년 이후 6년 연속 마이너스로 추락했다가 작년 0.8%로 소폭 반등했다.
그간 개혁으로 그리스 조세 체제가 상당히 강화됐는데도 불황의 여파에 세입도 2011년 910억 유로에서 작년 820억 유로로 오히려 9.86% 감소했다.
구제금융 시작 당시 IMF 등은 그리스 GDP가 2011년 바닥을 찍은 뒤 2012년부터 반등해 작년에 구제금융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으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의 성장률이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에도 1998년 한 해만 -7.3%로 떨어졌다가 이듬해부터 급속히 'V자 회복'을 이룬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마틴 울프 FT 수석경제논설위원은 칼럼에서 구제금융 이후 그리스 국민의 상품·서비스 지출이 실제로는 40% 이상 감소했다고 추산하면서 그리스의 불황이 '재앙'(catastrophe)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그리스 경제가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채무 상환을 위해 재정긴축에 주력한 구제금융 체제의 필연적인 실패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리스는 자국 통화가 없다 보니 IMF 사태 당시 한국처럼 급격한 통화가치 절하로 대외수지를 급속히 개선하거나, 통화완화 정책을 쓸 수가 없다.
따라서 재정긴축의 타격이 고스란히 구매력 축소로 이어져 불황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아쇼카 모디 전 IMF 유럽담당 부국장은 최근 유럽 대표 싱크탱크인 브뤼겔을 통해 발표한 칼럼에서 "국제 채권단이 요구한 재정긴축이 너무 심해서 경제 붕괴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깊은 경제 침체와 디플레이션으로 그리스 정부의 채무 상환 능력이 심각히 손상됐다"며 "중요한 것은 그리스가 더 깊은 부채 디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그리스를 방문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환자들이 병원 입장료 5유로(약 6천원)가 없어서 발길을 돌리거나 약이 떨어져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등 기초 보건의료 체제마저 붕괴된 현지의 참상을 전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 교수는 그리스 국민의 엄청난 희생에도 경제회복은 커녕 "구매력 파괴에 의한 경기 침체 심화로 대공황 수준의 고통과 엄청난 인도주의적 위기가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 채권단 트로이카가 "냉정하고 현실적인 척하지만, 실제로는 경제학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그들이 그리스에 부과한 프로그램은 전혀 말이 안 됐고 제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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