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의 짜릿함…SBS '풍문으로 들었소'

이현진 기자 / 2015-04-30 07:10:45
망원경 통해 옆집 들여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풍자'가진 자'와 '없는 자'의 속내와 욕망 코미디로 전달

[부자동네타임즈 이현진 기자] 한발만 물러서면, 시간이 조금만 흐른 뒤 생각하면 세상사 코미디가 아닌 게 없다.

또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면 그들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은 솔직히 어떤 일이든 구경하는 재미가 따르기 마련이다.

SBS TV 월화극 '풍문으로 들었소'는 제목처럼 그렇게 풍문으로 들은 듯한 '남의 일'을 관찰자의 시선에서 코믹하게 풍자하며 시청의 재미를 준다.

드라마가 매회 마지막 장면에서 인물들의 얼굴을 동그란 테두리에 넣어두고 하나씩 비추는 것은 시청자로 하여금 마치 그들의 모습을 옆집에서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가진 자'와 '없는 자'를 대비시켜 극단의 스토리를 배치한 뒤 알고 보면 인간이라는 족속의 뱃속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성세대, 기득권의 권위와 논리에 도전하는 신세대와 깨어 있는 자들의 막을 수 없는 꿈틀거림도 조명하며 응원을 이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읊어대지만…부리는 이들에게 감시당하고 조롱당하는 최상류층

남편과 아내 모두 24시간 비서를 대동하고, 집에는 집사와 가정부 등 일하는 사람이 많은 삶. 엄청난 부자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삶이지만 사생활은 없다. 비밀도 없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정호(유준상 분)-최연희(유호정) 부부는 대한민국 최고 로펌을 경영하는 뼈대 있는 재력가 집안의 주인으로 세상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





하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이들의 삶은 위선으로 요약된다. 신경 쓰지 않는 척,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척, 상처받지 않는 척, 초연한 척하느라 진심을 담아둘 공간이 없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체면을 차리느라 볼장 다본다.

또 입만 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외치고 학벌로 서열화되는 세상에 혀를 차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고 세습을 위한 환경을 공고히 다지며 없는 자들은 '당근과 채찍'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비뚤어진 생각으로 단단히 무장돼 있다. 또 틈만 나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읊어대며 '우매한 대중'과 자신들 사이의 경계를 확실히 긋는다.

드라마는 그러나 이런 한정호-최연희 부부의 모습을 'PD수첩'처럼 고발하지 않는다. 완벽을 기한다고 하지만 곳곳에 허점과 빈틈이 노출되고, 목에 힘주고 가식을 떠는 모습이 "웃기고 불쌍한" 이들 부부의 모습을 한편의 웃긴 소동극으로 그려나간다.





평생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모범' 적인 삶을 살다가 이른 나이지만 손자까지 본 상황에서 첫사랑의 거짓 유혹에 넘어가 정신을 홀랑 빼앗겨버린 한정호의 눈멀고 귀 먼 좌충우돌, "이런 뻔뻔하고 천박한 계집애"라며 벌레 보듯 멸시하던 며느리 서봄(고아성)이 영특함을 보여주자 금세 입장을 바꿔 "외출할 때 데리고 다니면 좋겠다"는 최연희의 허세는 유치찬란함의 극치다.

두뇌 회전은 빠르지만 작은 통증도 못 참는 한정호를 어린아이처럼 길들이고 다독이는 양비서(길해연), 가정주부지만 청소도 요리도 하지 않는 고고한 최연희의 휴대전화도 대신 받아주고 외출복도 골라주며 안마도 해줘야 하는 이비서(서정연) 등은 돈 때문에 이들 옆에 오랜 세월 붙어 있지만 결코 이 부부에게 마음까지 주지는 않는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모르는 세상이 있죠"…가진 자의 세상을 동경하는 '을'들

앞서 '풍문으로 들었소'의 안판석 PD는 "갑질 못지않게 을질도 풍자하겠다"고 자신했다.

고교 중퇴 미혼모가 될 뻔한 딸 서봄이 하루아침에 최상류층의 며느리로 입성하자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 삼촌 서철식(전석찬), 언니 서누리(공승연)는 자신들도 가진 자들의 세상에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꾼다. 물론 서봄 자신도.

세상에 저런 집이 또 있을까 싶게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정호네와 달리, 서민층을 대변하는 서형식네는 손에 잡힐 듯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들이 사는 외형적인 공간은 물론이고, 그들의 생각도 평범한 우리네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래서 공감이 가는 서형식네의 처지와 상황을 드라마는 '을'의 입장에서 그리돼, 그런 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횡재와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 돈 앞에 비겁하고 치사해질 수 있는 태도를 꼬집는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며 대찬 모습을 보여줬던 서봄은 갑자기 재벌가 며느리가 되자 자신이 누리는 것에 빠르게 동화돼간다. 생활에 찌들리는 미혼모가 될 뻔했던 서봄은 한정호의 며느리가 되면서 생활은 물론, 육아에 대한 부담도 떨쳐내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갑질'을 할 수 있는지를 서봄은 하루하루 시댁에서의 생활 속에서 배워나갔고, 급기야 시어머니의 비서 이비서를 '고용주'의 신분으로 밟아서 길들이려 했다. 동시에 서형식과 서철식은 사돈댁으로부터 한밑천 크게 떼어낼 기대를 했고, 서누리는 동생을 팔아 상류사회에 진입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들 넷은 차례대로 보기 좋게 한방씩 맞고 정신을 차린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모르는 세상이 있죠"라며 사돈댁을 한없이 치켜세우고 그에 편승해 뭔가 엄청난 콩고물이 떨어질 것을 기대했던 이들은 한심한 '을질'을 하다가 결코 만만하지 않은 현실에 부딪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 손톱만큼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을의 반격

신분상승을 꿈꿨던 것은 서봄 가족뿐만이 아니다. 한정호가 고용한 서봄-한인상(이준)의 고액 과외교사 박경태(허정도)도 그러했지만 이내 환상에서 깨어났다.

지난 28일 방송에서 박경태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 아래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샴페인 한 모금, 캐비어 한 수저에 멘탈이 흔들린다. 먹어봐야 맛도 모르는데 그 의전에 맛이 가는 것이다. '어 나도 이급이 되는 건가, 되고 싶다, 되야지'라고 하면서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라며 영혼이 털린다"고 고백했다.

박경태는 한정호로부터 자식들의 세뇌를 명받았지만, 어린 제자들이 아버지의 비리를 파헤치겠다고 나서자 '양식'을 되찾고 한정호에게 입바른 소리를 했다.

그는 "한인상과 서봄 세대는 자기들 세대를 스스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아이들이 낡은 인맥의 그물망에 기어들기를 바란다면 기꺼이 물러나겠다"고 일갈한 뒤 한정호 집을 나왔다.





30부 중 20부까지 방송된 '풍문으로 들었소'는 이제 한정호의 바람과 달리 부패한 기득권에 기대지 않고 양심을 찾으려는 자식세대와 깨어 있는 자들의 반격을 그리게 된다.

한정호의 로펌 한송이 과거 노조와 싸우던 악덕기업의 편을 들어 승소했던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사돈지간인 '갑' 한정호와 '을' 서형식은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해당 사건의 피해 당사자이지만 조카 서봄 때문에 고민했던 삼촌 서철식은 다시 한송과 싸워보기로 결심한 후 "지금 손톱만큼이라도 바꾸면 봄이도 살기 좋아질 거다. 안 그러면 봄이도 괴물로 살 수밖에 없다"며 말리는 형 내외를 설득한다.

드라마는 철옹성 같던 '한정호 월드'에 하나 둘 균열이 생기는 모습을 통해 잠시나마 살 만한 세상에 대한 희망을 꿈꾸게 한다. 패배주의에 젖지 않고 손톱만큼씩이라도 바꿔나가다 보면 세상은 그만큼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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