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맹 중국에 앞서 러시아 방문…'줄타기 외교' 구사
<김정은 방러 움직임> ① 북러 외교가 준비에 분주
국제 외교무대 첫 데뷔…북한 최고지도자 위용 과시
혈맹 중국에 앞서 러시아 방문…'줄타기 외교' 구사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다음달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징후가 30일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아직 북한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관련해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북한과 러시아 외교가에서는 김정은 방러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그의 러시아 방문이 기정사실화되는 듯한 분위기다.
러시아 당국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문을 장담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준비 중이다. 심지어 일부 러시아 관계자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왜 믿지 않느냐며 의아해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호베르투 콜린 북한 주재 브라질 대사도 평양에 주재하는 러시아 외교관들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준비로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며 평양의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국가정보원도 29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 단계에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로선 김정은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러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도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문 여부에 입을 다물고는 있지만 대사관 건물을 새로 단장하는 등 여느 때와 확실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번에 러시아를 방문한다면 지난 2012년 북한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이후 첫 번째 외국 방문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로 꼽히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다면 이는 유엔 회원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임을 전세계에 과시하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이번 행사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쯔엉 떤 상 베트남 국가주석 등 26개국 정상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명실 공히 북한 최고지도자임을 알리는 셈이다.
북한이 정상외교 경험이 전무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첫 외유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같은 양자 외교무대가 아니라 다자 외교무대로 선택한 속내가 돋보인다.
국제사회의 전방위 제재에도 불구하고 외국 정상들과의 만남을 통해 국제사회의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면 대내적으로도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이 첫 외국 방문국을 중국이 아닌 러시아로 선택한 데는 중국 지도부에 보내는 함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북중 양국은 2013년 북한의 제3차 핵실험과 장성택 처형 이후 1년 넘도록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더욱이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6월 북한보다 남한을 먼저 찾은 것은 김일성·김정일 체제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따라서 체면에 상처를 입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되갚아주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결국 첫 외유지를 중국 대신 러시아를 택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의 내정간섭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기'가 엿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정권 수립 이후 1970년대까지 옛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끊임 없이 추구했던 '줄타기 외교'를 따라 하는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나아가 중국 지도부가 김정일 시절의 '무조건 북한편' 식으로 회귀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현재 양국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문제 삼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의 러시아 우선 방문은 중국 지도부에 대한 불만 표출을 넘어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중국의 대북정책을 과거로 되돌리려는 압박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김정은이 오는 9월 중국에서 열리는 제2차 대전 승리 70주년 열병식 행사에 초청받았는데, 전적으로 김정은의 맘 먹기에 달려 있다"며 "만약 모스크바에 간 그가 베이징에도 가려면 중국 지도부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정은 제1위원장의 이번 러시아 방문이 이뤄진다면 지난해부터 급속히 강화되고 있는 양국간의 경제협력에 더욱 큰 활력소를 불어넣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만약 다음달 7일 러시아 방문길에 오른다면 다음날인 8일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폭넓은 경제협력에 합의하고 귀국길에 양국 경제협력의 핵심지역인 극동지역을 순방할 가능성이 높다.
양국은 최근 평양에서 경제협력위원회 7차 회의를 열고 러시아의 대북송전, 정유공장 현대화, 돼지가공공장 건설 등 다양한 협력사업에 의견을 모았다.
따라서 이번 방문은 세계 대국 중 하나인 러시아와의 정치적 유대 뿐 아니라 경제 협력에 박차를 가하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호재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일정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고 북한의 공식 발표도 없어 그가 평양을 출발하기 전까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러시아 방문 일정과 정상회담 의제, 경호 문제 등을 논의 과정에서 협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러시아 방문이 취소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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