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50년전 트라우마…대예멘 지상군 파병 '주춤'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마스프트 엘 세카."(얼마 남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예멘 시아파 반군을 폭격하자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지상군 파병을 시사하며 자신이 평소 자주쓰는 이 말을 반복했다.
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공습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곧 이뤄질 것 같았던 이집트의 지상군 파병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예멘 시아파 반군 격퇴 초기 지상군 파병까지 예고했던 이집트가 최근 이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면서 50년전 '예멘 트라우마'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번 작전을 사우디가 주도하는 만큼 이집트는 어느 수니파 아랍권 국가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우디는 위기에 빠진 이집트 재정을 채우는 든든한 후원자일 뿐만 아니라, 아랍권의 '맏형'으로서 쿠데타로 집권한 엘시시 정권이 정통성을 인정받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엘시시 대통령은 사우디에 경제적, 정치적 빚을 진 셈이다.
작전을 이끄는 사우디의 전략적 판단이기도 하지만 이집트가 예멘에 지상군을 파병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1962년부터 8년간 벌어진 북예멘 내전 파병의 쓰라린 역사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962년의 예멘 상황은 최근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20세기 초부터 지속한 예멘왕조(무타와킬리야 왕조)는 1962년 공화정을 주장하는 군부의 쿠데타로 혼란에 빠지면서 왕조를 지지하는 왕당파와 공화정파로 나뉘어 내전을 벌였다.
당시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주도한 아랍 민족주의 열풍에 영향받은 공화정파는 예멘 왕조를 전복하기 위해 쿠데타를 벌였고 이집트 정부는 이들을 전폭 지원했다.
이후 1970년까지 이어진 북예멘 내전에 이집트는 1967년까지 5년간 지상군 7만명을 파병했다.
내전은 비록 공화정파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집트는 파병 5년간 병력 수천명을 잃으면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과 비유될 정도로 예멘 내전의 수렁에 빠졌다.
이집트 지상군이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자국과 너무 다른 예멘의 지형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집트 지상군은 사막 또는 시가전에 익숙했던 반면 내전이 벌어진 북예멘 지역은 산간이 대부분인 탓이다. 이번 예멘 반군 격퇴 작전에 파키스탄 지상군 파병이 유력했던 것도 예멘과 파키스탄의 지형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집트의 1967년 이스라엘과 6일 전쟁에서 대패하면서 예멘 파병군을 철수한다. 중동의 강국이던 이집트의 패배는 충격적이었고, 이는 무리한 예멘 파병의 여파라는 비판 여론에 불을 붙였다.
50여년 전이긴 하지만 이집트 국내 여론이 지금도 파병에 부정적인 데엔 이런 실패의 역사가 배경이라는 게 중동 언론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상군 파병을 검토한 파키스탄이 아랍권 동맹군에서 빠진 것도 이집트가 지상군 파병을 망설이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를 중심으로 카이로가지 위협하는 반정부 무장조직으로 불안해진 국내 안보· 치안 상황에 대처하는 데만 해도 녹록지 않은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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