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소송 승소 中 공안 출신 동포 "신념 지킬 것"
3년 전 탈북자 고문 양심선언…"추방당하면 감금될 수도"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중국동포 이모(44) 씨는 고향인 선양(瀋陽)에서 공안(경찰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공직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20년 뒤, 그는 한국에서 난민 자격을 얻기 위해 법정에 섰다.
지난달 말 서울행정법원은 이 씨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 씨가 3년 전 기자회견에서 탈북자 고문 사실을 밝힌 점이 박해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씨는 지난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감동이 크다"며 "앞으로 책임감을 더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0년 방문취업비자(H-2)를 받고 입국한 이 씨는 2012년 8월 탈북자 관련 단체가 주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양심선언'을 했다.
당시 그는 "중국에서 공안으로 일할 때 탈북자를 고문한 적이 있으며 다른 부서에서도 전기고문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활동을 펴오며, 2013년 2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하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 씨가 애초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오지 않았고, 양심선언만으로 중국의 박해 대상이 될 가능성은 낮다'는 이유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난민 인정의 핵심인 본국으로부터의 박해 가능성을 낮게 본 셈이다.
반면, 행정법원은 정치적 박해 가능성에 주목했다.
법원은 "이 씨의 발언이 언론에 다수 보도되고, 자국 비판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을 봤을 때 박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난민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큰 고비를 넘긴 했지만 이 씨가 갈 길은 아직 멀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곧바로 항소했고, 사건은 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씨는 "사법기관의 정보를 폭로했기 때문에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중국으로 추방되면 감금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했다.
지인들은 그에게 '중국에 오면 양심선언 자체가 거짓말이었다고 하는 게 네가 살 길'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 씨는 "양심선언을 하는 순간부터 난 이미 열차를 탄 셈"이라고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추방되더라도 신념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의 신념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었다.
괄시받는 동포들을 보며 힘을 키워야겠다는 꿈을 품고 선양경찰학교에 들어간 이 씨는 1995년 선양 화평분국 서탑파출소에서 공안 근무를 시작했다.
그의 근무 지역은 조선족·탈북자·한국인 등이 뒤섞여 사는 선양의 코리아타운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동포 간 갈등을 목격하며 그 가운데서도 약자인 탈북자의 아픔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2002년 병가를 내고 쉬는 와중에 근무 태만을 이유로 갑작스레 해고를 당하면서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정부에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더니 빌미를 만들어 저를 범죄자 취급을 했습니다. 공무원이 아닌 평범한 서민으로 중국이란 나라를 접하고 보니 정말 독재국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살 수 없겠다고 느꼈죠."
미국에서 1년을 보낸 뒤 중국에서 벌인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그는 2010년 홀로 한국으로 향했다.
가족과 헤어져 일용직으로 생계를 잇는 고된 삶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제 모국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살 수 있잖아요. 독재국가는 나 아니면 모두가 적이에요.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다른 가치를 인정해 주잖아요. 그게 제게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양심선언도 이런 믿음에서 비롯됐다. 2012년 당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 씨가 중국에서 공안 당국에 체포돼 고문을 받았다고 밝힌 사건이 자극제가 됐다.
이 씨는 "그전부터 양심선언을 하려다 겁이 나 못하고 있었는데 김영환 씨 사건으로 용기를 냈다"면서 "밝히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 씨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난민 자격을 얻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2천896명. 이 가운데 3%인 94명만이 난민 자격을 얻었다.
이 씨의 사건을 담당한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세진 변호사는 "난민 인정 여부는 박해 가능성을 위주로 판단해야 하지만 출입국 관리당국은 난민 신청의 남용 가능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며 "신청 남용은 절차 개선으로 해결해야지 난민 전체를 관리와 통제 차원에서 바라보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난민 인정이 되든 안 되든 인권과 관련된 일을 계속 하고 싶다"며 "신념을 지키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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