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순 "흙 만지며 욕심 덜어내…반농사꾼 됐어요"

편집부 / 2015-04-22 20:53:06
싱글 프로젝트 첫곡 '고사리장마'…"음악 묵히지 않고 들려줄게요"


장필순 "흙 만지며 욕심 덜어내…반농사꾼 됐어요"

싱글 프로젝트 첫곡 '고사리장마'…"음악 묵히지 않고 들려줄게요"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제주에는 봄비의 강도가 센 편이다. 거센 바람과 함께 며칠씩 비가 쏟아진다. 비로소 날이 갠 아침이면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잎들이 습기를 머금은 이때 숲에 가면 손가락 굵기만 한 고사리가 지천이다. 봄비를 맞고 훌쩍 자란 것이다.

제주에 사는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이 들려준 이야기다.

자신의 집 앞마당에 피어난 물안개 사진을 보여준 그는 제주사람들은 고사리가 한 뼘씩 자라는 짧은 봄장마를 '고사리장마'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고사리장마'는 그가 최근 발표한 신곡 제목이기도 하다. 이 곡은 그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싱글 프로젝트 '소길1화(花)'의 첫 곡이다. 매월 한 곡씩 발표해 차곡차곡 쌓아 8집 '수니 8'에 담을 예정이다.

22일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디지털 싱글을 내는 게 처음인데 제겐 안 맞는 느낌이었다"며 "주위 음악 하는 후배들이 '채소도 신선한 게 좋듯이 음악도 작업을 바로 끝냈을 때 들려주면 감흥이 다를 것'이라고 말해줘 앨범 한 장을 위해 음악을 묵히지 않고 들려주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 터를 잡고 산지도 오는 7월이면 만 10년이다. 올해 서울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5년 7월19일 집에 장판 깔고 도배한 뒤 22일에 입주했으니 딱 10년이네요. 지금은 개 6마리를 키워 근처에 사는 (이)효리보다 한 마리 더 많아졌어요. 200평 되는 텃밭에서 토종 상추, 토종 고추 등 갖은 채소를 키우고 마당에도 나물 씨를 뿌렸어요. 지금이 한창 밭일이 많아 씻어도 손톱 밑이 까매요. 하하."

그의 손때가 가득한 보금자리에는 서울 손님들이 곧잘 찾는다.

싱어송라이터 이규호는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씩 머물고 간다.

이적 역시 1년 반 전 이곳을 들렀다가 장필순에게 "누나에게 어울리는 곡을 썼다"며 노래 하나를 선물했다.

이적이 장필순의 집 거실에서 통기타 반주에 맞춰 불러준 곡이 '고사리장마'다. "완성된 가사는 아니었는데 이적이 고사리장마를 알고 있는 게 신기했고, 운율이 너무 예뻤다"고 한다.

'부슬부슬 비가 오길래/ 홀로 숲으로 나갔어/ 그대와 늘 함께 걷던 길/ 놀랍게 달라 보여/ 그토록 찾아봐도 안보이더니/ 어느새 소리 없이 솟아올라 온 고사리들/ 당신을 보내고 난 뒤/ 이렇게 훌쩍 자랐네~.'('고사리장마')

패닉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적과의 작업은 처음이다.

노래 녹음은 늘 그렇듯이 홈레코딩으로 완성했다. 박용준의 피아노가 도드라지는 가운데 '허스키하다'고만 표현하기엔 부족한 장필순의 '싸한' 음색이 실려온다. 마치 힐링뮤직 같다.

LP판을 들을 때처럼 '지지직' 거리는 잡음이 박힌 건 효과음을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다.

그의 음악 작업은 이제 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 곡 작업이 안 풀리면 마당의 풀을 뽑거나 텃밭에 나가 김을 맨다.

그는 "욕심을 덜어내는 걸 배웠다"며 "예전엔 기타 치는 욕심이 있었는데 이젠 연주 잘하는 후배들이 많으니 그런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농사 욕심은 생기더라. 고추 모종을 심어놨는데 어느 날 보면 훌쩍 자라 신기하고 성취감이 있다. 농약 안 치고 키워 이웃들 나눠주고 서울로 보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10년간 시골에 파묻혀 살다 보니 그도 반 농사꾼이 됐다. 재봉틀 없이 바느질로 옷을 지어 입고, 화려한 구두보다 밭에서 신기 좋은 장화 얘기에 귀가 더 솔깃해진다. 먹고 맛을 느끼니 나물 이름도 꽤 익혔다. 텃밭 얘기를 할 때면 절로 미소가 번졌다.

"처음엔 흙을 만지기 싫었는데 이젠 굵은 지렁이도 손으로 잡아요. 항아리에 자연 퇴비를 잘 숙성하면 뚜껑을 열었을 때 탁한 냄새가 아니라 자연의 향이 나니 그런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배움이고요. 흙이 절 '컨트롤' 해 주는 것 같아요."

그의 전원생활이 이상적이었을까. 이후 이효리, 루시드폴 등 많은 뮤지션이 제주로 터를 옮겼다. 배우 류태호,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을 만든 김태웅도 이웃이 됐다.

"소길리가 예술인 마을이 됐다"고 하자 "유명한 분들이 많이 오셨다"고 웃었다.

사실 그가 제주로 떠날 때만 해도 '어쩌면 이제 음악을 그만 해야 하나보다'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실제 그는 2002년 6집 이후 8년간 앨범은 물론 공연조차 휴지기였다. 2010년 대학로에서 '8년이 지난 지금'이란 타이틀로 공연하며 음악 행보를 재개했다.

그는 "이승철 씨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란 노래처럼 안녕은 함부로 고하는 게 아니다"고 웃었다.

그럼에도 다른 뮤지션에 비해 더딘 그의 음악 작업은 올해 속도가 붙을 듯 보인다.

신곡을 선보이는 싱글 프로젝트와 별개로 그간 발표한 앨범 곡, 드라마 OST 곡 등을 다시 편곡하고 녹음해 베스트 앨범 '수니 리워크 1'(Soony Rework 1)을 발표한다.

이 앨범 수록곡들 역시 이달 말 '제비꽃'을 시작으로 한 곡씩 꺼내 보인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한 지점에서 만나듯 신구(新舊) 곡을 선보이는 싱글 프로젝트가 투 트랙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그는 지난 30여년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면 비를 맞은 고사리의 변화처럼 변곡점이 있다고 했다. 1982년 대학연합 음악동아리 '햇빛촌'으로 데뷔한 그는 1983년 여성듀엣 '소리두울' 활동, 1989년 솔로 1집 '어느새'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솔로 1집을 냈을 때 한 번의 큰 성장이자 변화였죠. 이후 제 주관으로 음악이 이뤄지다가 3집 때 조동익 선배를 만나며 음악이 변했고요. 5집 때는 '하나음악'이란 레이블에서 앨범을 내며 음악이 보다 강해졌고 메시지가 실렸죠. 마지막으로 제주로 가면서 또 한차례 변화가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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