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역 전문가 한상에게 배운다> ④멕시코 박홍국
'현지 동화'가 성공 비결…"평생직장 말고 평생직종 찾아라"
(구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서울 용산 출생. 양정고, 고려대 졸업. 학군사관(ROTC) 27기. 한진해운 입사'
박홍국(48) 씨는 누가 봐도 부러워할 이력의 소유자였다. 잘나가는 '대기업 회사원'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그래서 12년 6개월 동안 어깨를 으쓱거리며 출퇴근하고, 결혼해 아이도 낳아 기르며 '모범 가장(家長)'으로 살았다.
그러나 가슴 한쪽에는 불만이 쌓여갔다. '이렇게 회사원으로 인생을 끝내야 하는가'라는 직장인들의 본질적인 고민 때문이었다. 박 씨는 사업가로 명함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컸다.
1994년 한진해운 지역전문가로 1년간 칠레에 파견을 나갔다가 귀국한 뒤 해외 생활의 매력을 떨치지 못했다. 5년 뒤 멕시코 지점장으로 발령나면서 그는 고민 해결에 실마리를 찾았다. 2002년 잠시 귀국했지만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이듬해 멕시코로 날아갔다.
"당시에는 '중남미 주재원 불패 신화'라는 말이 돌 정도로 호황이었죠. 본사 발령만 받으면 주재원들이 사표를 내고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10명 중 9명이 성공했다는 말이 나왔어요. 그래서 저도 회사를 그만뒀던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 없이 무턱대고 뛰어든 사업은 소문처럼 쉽지는 않았다. 4년간 엄청난 시련이 따랐다. 자금, 경험, 인맥 등 '삼(三) 부족'에 시달린 것이다.
당시 잘나갔던 9명 중의 3명만 살아남았을 정도로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업에 뛰어든 주재원들은 실패를 맛보고 귀국했다. 박 씨는 "업종 변경이 아닌, 업종 확장을 하지 않은 분들은 거의 사업을 접었다"고 회상했다.
박 씨는 그동안 자만했다는 반성과 함께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새삼 돌아보고서 원래의 자리인 운송 중개업으로 돌아왔다. 2007년께 때마침 한국 철강업체와 건설업체가 멕시코에 진출하면서 그는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전공 분야인 벌크 및 프로젝트 화물 운송업에 뛰어들어 안정을 찾았고, 그렇게 탄생한 기업이 바로 종합물류업체인 '뉴맨인터내셔널'이다. 멕시코 내 중소도시 5곳에 사업장을 두고 있으며 140여 명의 직원과 함께 연간 2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의 성공 노하우는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다는 것. 그리고 돈을 벌면서 한 업종에 만족하지 않고, 파생 업종에 계속 투자했다는 점이 남들과 다르다. 통근버스 운영, 상용 트럭 중개, 창고업, 화물 검수, 통관, 선박 대리점까지 물류에 관한 한 토털 서비스를 하는 업체로 성장시켰다.
그는 '현지 동화(同化)'를 가장 중요한 사업 비결로 꼽는다. 멕시코와 한국은 상업 문화의 차이가 크고, 그것은 인식의 부족에서 오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한국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히 중간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고객들이 '알베르토(현지 이름), 당신 국적은 어디야'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의 국적은 한국도, 멕시코도 아닌 비즈니스맨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현지인과 동화하기 위해서죠. 이런 철학이 필요하고, 그 철학을 보여줄 때 고객은 저를 믿어줍니다. 멕시코에서는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는 분야도 있는데 어쩔 수 없이 현지인과 동업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죠. 그렇기에 동화는 아주 중요한 비즈니스 마인드입니다."
특히 물류 사업을 하려면 주류사회에 동화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렇다고 민족 정체성을 잃고, 비즈니스 정체성만 찾으라는 뜻은 아니다.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높은 51층 빌딩에는 백인만 들어가는 식당이 있어요. '클럽 피소(계단) 51'인데요. 회원 800명 중 제가 유일한 한인입니다. 백인들이 친구로 여기지 않으면 절대로 못 들어가는 클럽이죠. 물류업을 하면서 이뤄낸 성과입니다. 이곳에서 정보도 교환하고 비즈니스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박 대표는 '평생직장' 말고 '평생직종'을 찾으라고 차세대들에게 권한다. 24년간 '물류'라는 한길을 갔기에 결실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직이 기회도 되지만 리스크(위기)라는 점을 명심하라고 충고한다.
"한 우물을 파다 보면 자기가 선택한 업종에 대한 프로파일이 생기고, 그것을 스스로 관리하게 됩니다. 직장과 업종을 바꿔가면서 연봉만 늘리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인맥 관리의 중요성도 성공 비결로 꼽는다.
"따로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제 나름의 스타일은 있습니다. 두루뭉술하지 않게 핵심적인 사람과 오래 인연을 맺죠. 리더를 잡으면 그 사람이 인맥을 관리해 주거든요. 역량 있는 핵심 인물과 집중적이고 장기적으로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박 대표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가 21일부터 경북 구미시에서 개최하는 제17차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 참가했다. 월드옥타 멕시코지회장인 그는 22일 베트남 호찌민지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지회, 브라질 상파울루지회, 파라과이 아순시온지회, 칠레 산티아고지회와 비즈니스 및 차세대 무역스쿨 개최 등과 관련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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