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아프간 시아파 하자라 족, 피랍 31명 생사도 몰라
"수니파 탈레반 소행" 추정…수니파에 수십년간 박해당해
(서울=연합뉴스) 정일용 기자 = 멈춰선 버스 두 대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좌석에 그대로 앉아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복면한 채 총을 든 남자들이 버스에 오르더니 신분증, 휴대전화를 빼앗아 갔다. 이어 남성과 여성, 수니파와 시아파로 가른 뒤 시아파 남자들을 하차시켰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모두 하자라 족이었다.
납치범들은 성인 남성, 소년 등 모두 31명을 데리고 아프가니스탄 남부 자불 지방의 험준한 지역으로 사라져버렸다.
가족들은 피랍자들의 생사도 모른 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9일(현지시간) 전했다.
나마툴라 누리(40)는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며 당시 버스에 타고 있다가 생환한 어머니가 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우리를 표적삼아 괴롭히는 무리가 있는데 정부에서는 도와주지도 않는다."
그의 아버지(65)는 피랍자 중 한 명이었다.
최근 아프간 내부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출현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널리 퍼져있다.
31명 납치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두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아프간 관리와 하자라 족 지도자들은 IS에 충성을 맹세한 탈레반 분파가 자불 납치사건의 배후에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하자라 족에게 이번 납치사건을 비롯한 몇 건의 피습사건은 과거 파슈툰 족과 수니파 탈레반 치하에서 그들이 당했던 박해를 상기시킨다. 아프간 관리와 하자라 족 웹사이트에 따르면 3개 지역에서 최소한 세 차례 이상 대규모 납치사건이 발생했다.
하자라 족 활동가인 아야툴라 메흐에르야(30)는 "우리는 예전부터 보통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투쟁해 왔다"며 "그러나 이런 공격 사례들은 지난 13년간 우리가 이뤘던 발전을 '그들'이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0세기를 통틀어 아프간을 통치했던 파슈툰 족은 아프간 인구의 20%를 차지하면서 세 번째로 많은 하자라 족을 탄압해 왔다. 종교적으로도 소수인 하자라 족은 학살을 당하는 등 박해를 받아왔다.
파슈툰 족은 그들이 저항하면 철저히 분쇄했고 종교지도자들을 투옥했으며 여성들을 납치해갔다. 대부분의 하자라 족은 빈곤과 천대 속에 살아가야 했고 하찮은 직업에 종사해야 했다.
탈레반은 하자라 족을 대규모로 학살하는가 하면 고향에서 내쫓았다. 수만명이 산중 은신처로 쫓겨갔다. 지난 2001년 초 탈레반은 하자라 족 고향인 바미안 지방에 수백년 전 세워진 두 점의 거대 불상을 철저히 파괴해버렸다.
2001년 말 탈레반 붕괴 이후 하자라 족은 '재탄생'의 기회를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란 등 망명지에서 귀환해 미래를 설계했다. 신세대는 대학 졸업 후 유엔, 외국기업, 국제구호단체 등에 자리를 잡았다. 경제적으로 번창했고 정치적으로는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공격도 조금씩 심해졌다. 2011년 카불 자살폭탄 사건으로 시아파 56명이 사망했는데 하자라 족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에는 아프간 중부 구르 지방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가던 하자라 족 15명이 살해됐다.
여기에다 지난 2월 납치사건까지 발생하면서 하자라 족 내부에는 분노가 들끓고 있다.
당시 피랍자 대부분은 이란에서 귀환하는 길이었다. 일부는 이란에서 건축 일 등을 하다가, 또 일부는 친척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리(40)의 부모는 17살 된 아들의 병 치료차 이란에 갔다. 이 아들은 버스에 오른 무장 남성들을 보자마자 혼절해버렸다. 어머니가 살려 달라고 빌어 가까스로 아들 목숨은 구했지만 남편은 끝내 끌려가고 말았다.
누리는 "탈레반 아니면 누가 했겠어요?"라고 했지만 탈레반 측은 이번 납치 건을 부인하고 있다.
탈레반은 해체되기는 했지만 그 분파들이 자기나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부는 자금과 명성을 얻기 위해 IS에 합류하기도 했다고 미군 측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자불 납치사건 생존자들은 납치범들이 현지어를 썼고 억양으로 볼 때 파슈툰 족인 것 같았다고 당국에 설명해줬다. 이에 따라 관계자들은 아프간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IS 추종자들, 즉 '대시'(Daesh)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피랍자 가족들은 매일 아침 종족 지도자와 관리들을 만나 피랍자들이 어떻게 됐는가 물어보지만 매일 저녁 그들은 실망한 채 귀가하기 일쑤다.
하자라 족은 이제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소규모이지만 수도 카불 등 국내 도시는 물론 호주, 유럽에서까지 시위를 벌였고 트위터, 웹사이트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는 대통령궁 근처에 텐트를 쳐놓고 항의 시위를 벌일 참이다.
파키스탄 고향집에서 카불에 와 머문 지 5주가 됐다는 후세인 알리(67)는 "피랍자들이 어떻게 됐나고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며 "내 아들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때까지 카불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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