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법·공안의 정점에 섰다 추락한 저우융캉
(베이징=연합뉴스) 진병태 특파원 = 중국 검찰이 3일 부패혐의로 기소한 저우융캉(周永康·72) 전 정치국 상무위원은 오랫동안 중국 사법·공안의 정점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정권에서 중국 권력의 심장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 일원이었다.
후 전 주석을 포함한 전체 상무위원 중 서열은 9위로 최하위였지만 공안, 검찰, 법원, 무장 경찰, 국가안전부 등을 총괄하는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를 맡으면서 '실세 상무위원'으로 통했다.
장쑤(江蘇)성 우시(無錫) 출신으로 베이징(北京) 석유학원에서 수학한 후 1967년 다칭(大慶) 유전에서 기술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뛰어난 수완으로 석유공업부 부부장, 중국석유천연가스총공사 사장, 국토자원부 부장 등을 역임하며 수십년간 석유산업을 좌지우지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도움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9년 쓰촨(四川)성 당서기, 2002년 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공안부장 등으로 승진했고 2007년에는 마침내 상무위원 자리까지 꿰찼다.
정치국 상무위원 승진 과정에서는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의 추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저우융캉은 자신만의 독자세력도 구축해왔다. 이른바 '쓰촨방'(四川幇)과 '석유방'(石油幇)이다.
그가 1999∼2002년 쓰촨성 서기로 근무할 때 구축한 인맥관계를 뜻하는 쓰촨방과, 지금은 해체된 중국 국무원 석유부 또는 석유학원 출신의 인맥을 일컫는 석유방은 저우융캉과 함께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다 지난 2년간 수십 명의 전·현직 고위급 인사들이 체포되면서 초토화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저우융캉의 부정부패 혐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적발됐는지는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중화권 언론들은 저우융캉이 몰락한 계기는 2012년 2월 발생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당서기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관측을 제시했다.
시 주석의 정치적 라이벌이기도 했던 보시라이는 2013년 10월 47억 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직권을 이용해 아내의 살인 행각을 무마하려 한 혐의 등이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몰락했다.
보시라이 '후원자'로 알려져 온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에 대한 처벌 방향을 놓고 시 주석 진영에 강력히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그가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이날 기소 내용 가운데는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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