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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방, 춤추는 산과 물, 2007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온고지신으로 한국화를 그리다…송영방 '오채묵향'전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어렸을 때부터 먹을 갈아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었어요. 흐느적거리는 붓으로 어떻게 직선을 그을 수 있을까 그런 것도 신기했으니까…. 여러 번 붓을 그어봐야 그 원리를 알지."
한국화를 그리는 우현(牛玄) 송영방(宋榮邦)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31일부터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한국 현대미술 작가 시리즈의 한국화 부문 두 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 제목은 '오채묵향'(五彩墨香)으로, 이는 다섯 가지 먹빛과 먹의 향을 뜻한다.
동양회화에서 다섯 가지 먹빛은 먹의 농담(濃淡)과 건습(乾濕), 초(焦) 또는 흑(黑)을 말하는 것으로, 곧 먹색의 풍부한 변화를 의미한다고 미술관은 설명했다.
1936년생인 작가는 1961년 묵림회(墨林會) 창립에 참여하는 등 새로운 추상수묵을 꾀해 담담하고 소박한 자연주의적 화풍으로 특유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1960~1970년대 실험성 짙은 추상화 계열 작품, 실경산수(實景山水), 작가가 독자적 양식으로 발전시킨 반추상의 산수화, 사군자(四君子)와 화조, 인물, 동물화 등 다양한 그림이 소개된다.
전시 시작에 앞서 30일 만난 송영방은 "한 번 본 풍경이나 대상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기보다는 마음에 담아두고 묻어뒀다가 그림으로 표현한다"며 "흉중구학(胸中丘壑·마음 속에 언덕과 골짜기의 심상이 있다는 뜻)이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작가는 유년기에 집안에서 먹을 갈거나 제사에 필요한 지방문(紙榜文)을 써 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기에 "붓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거쳐 스스로 고난한 역사 속에서 살아왔다는 그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 재학 시절 문학잡지나 신문 연재소설 등에 삽화를 그리면서 등록금을 마련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요즘 시대가 "서양화에 너무 매몰됐다"면서 "한국화는 예부터 내려오는 토산품 취급을 많이 받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양미와 서양미는 기차의 두 레일처럼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어 함께 뻗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는 우리 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바다 건너서 온 남의 것이 더 아름답다고 기웃거리는 이 시점에 우리 것이 아름답다는 긍지가 필요하다."
전시작 중에는 동양적이고 불교적 색채가 짙은 진흙에서 피어나는 연꽃, 문수보살 등을 소재로 한 작품도 포함돼 있다.
그의 작품은 실재하는 금강산, 설악산, 북한산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많은 부분을 생략하거나 간결하게 표현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매화 그림을 설명할 땐 "매화의 굵은 가지는 힘이 있고 작은 가지는 얽히고설켜 있으며 꽃은 부드럽다"며 "그러니 그리기는 어렵지만, 조형적으로 그 특징을 잡아내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아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을 강조했다.
"옛것을 팽개치지 말고 거기서 새로움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진화가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선호할 순 있지만, 매화를 포함해 사군자 중 하나를 그림으로 섭렵해 볼 것을 권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여러 시련을 경험한 뒤에야 독특한 자신의 그림이 나온다고 작가는 믿고 있었다.
"동양의 미술 역사는 실로 엄청나지 않은가. 하루아침에 통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세계를 '자기화'하고 득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저는 지금도 공부하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더 좋은 그림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겠다."
전시는 6월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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