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대중화 위해 예술적 관점을 가져야 하는 이유
獨 과학사가 에른스트 피셔 '과학한다는 것' 재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교양인은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과학이 필요하다. 그들은 그 과학 지식을 통해 외적으로는 세계를 향해 조금 더 품이 넓어질 수 있으며 내적으로는 자신 안으로 조금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신 자연과학 연구의 성과물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블랙박스'와도 같다. 교양인으로서 갖춰야 할 과학 지식의 최소한은 어디까지일까? 이 같은 질문에 답하는 저명한 독일의 과학사가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쓴 '과학한다는 것: 세상과 소통하는 교양인을 위한'(Die andere Bildung)의 번역본이 국내에서 10년만에 재출간됐다.
책은 과학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쓴 통상의 과학소개서와는 관점을 달리 한다. 저자는 과학을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예술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예술인가? 우선 과학이든 예술이든 우리가 대하는 사물에 대한 통찰을 담으려 했다는 점에선 동일하다는 점에서다. 저자는 이를 양자역학의 기초를 닦은 닐 보어의 '상보성'(complementarity) 개념을 원용해 설명한다.
자연은 예술적 관점에서 "대지의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이와 상보적으로 자연과학의 관점에선 "천연자원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것. 저자는 과학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으려면, 예술과의 상보적 관계 속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과학이 예술과 함께 대중적 교양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일은 개별적이고 고도로 전문화한 과학 지식들을 '전체성'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하는 언어적 작업이다. 예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건 바로 이 지점에서다. 저자는 "과학 없는 예술은 우스꽝스러운 것에 머무를 위험성이 많고, 예술 없는 과학은 비인간적일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대중이 과학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인간적 감성을 담아낸 교양인의 관심사와 맞닿아아야 하고, 이를 위해 예술의 관점을 반영한 통일성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셔는 그 한 실례로 과학사의 획기적 발견으로 일컬어지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연결짓는다. 사실 지동설은 관찰을 통해 당시에 그렇게 증명됐다기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이성에 부합했기 때문"에 제기됐다.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를 "인간이 과학을 통해 겪어야 할 커다란 모욕 중 하나"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칸트의 생각은 다르다. 칸트는 이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인식이대상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인간의 인식력에 따라 움직인다"는 관념을 시도했다.
이는 과학과 예술, 철학이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상징하는 동전의 앞뒷면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엄청난 과학적 발견으로 평가받지만, 그에 영감을 주고 다시 철학적 사유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이와 궤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통섭의 지혜가 현대적으로 더욱 의미를 갖는 까닭 또한 이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이번 재출간은 과학과 인문을 종횡하는 피셔의 방대한 학문 영역을 지난 번역본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역자들의 자성에서 출발해 이뤄졌다.
김재영·신동신·나정민·정계화 옮김. 반니. 512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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