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된 인권위 등급보류…1년 후 명예회복 가능할까
인권위법 개정안 법제화·후임 위원장 투명한 선출 등이 관건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국제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가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등급 심사를 세 차례 연속 보류한 것은 사실상 예상된 결과였다.
인권위가 이번 심사를 앞두고 등급 재보류나 강등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고군분투했지만, ICC의 권고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인권위 안팎에서 많이 거론됐다.
ICC는 인권위에 대해 처음으로 등급 보류 판정을 할 당시 인권위원 임명 절차의 투명성과 참여성이 보장되지 않고 위원 선출 시 평가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원과 직원의 다양성 보장 및 면책 조항이 미비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인권위원이 주로 법조인 출신으로 구성되고 인권 분야와 관련이 없는 인물들이 추천된다는 점은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부분이었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현병철 위원장 체제에서 자격 논란이 있는 인권위원들이 임명돼 각종 국내 인권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자 더욱 거세졌다.
이에 인권위는 상임위원 임명 시 청문회를 도입하도록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답변서를 ICC에 제출했다.
답변서에는 '인권위원 선출의 원칙과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지명권자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에게 권고하는 계획이 포함됐다.
그러나 ICC는 지난해 11월 심사에서 이러한 조치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 또다시 등급 보류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인권위는 인권위원 인선과 관련, 학계·법조계·시민단체 등 각 영역별 인권위원의 자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의 제2차 인권위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구성원의 기능적 면책조항을 신설하고 인권위원 선출·지명 관련 사무규칙에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반영하기도 했다.
인권위의 이런 자체 노력에도 인권위법 개정안은 관계부처의 무관심 속에 국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인권위가 국회·정부·대법원에 가이드라인을 반영한 인권위원 선출·지명 절차에 관한 내부 규정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것 역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ICC는 이번 심사에서 기존과 마찬가지로 인권위원 인선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다양한 위원으로 구성되지 않은 점, 면책특권 조항이 약하다는 점을 재차 언급하면서 인권위법 개정안이 입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지적했다.
인권위는 ICC가 인권위법 개정안 외에 가이드라인이나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던 만큼 인권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다음 심사에서 A등급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또 ICC가 심사를 1년 후로 연기한 것이 오는 8월로 임기가 끝나는 현 인권위원장의 후임 선출 과정을 중요하게 지켜보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ICC는 이번 심사에서 인권위원장 후임 선출 시 역량을 기반으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지원자를 최대로 모집하고 모든 과정에 광범위한 협의와 참여가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 등을 권고했다.
결국 이런 권고 내용을 보면 1년 후에도 인권위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거나 투명한 과정을 거쳐 자격을 갖춘 후임 인권위원장이 선출되지 않을 경우 인권위는 등급 강등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B등급으로 강등되면 ICC의 각종 투표권을 잃게 되며 인권위뿐 아니라 한국의 국제사회 위상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인권단체인 새사회연대 신수경 상근대표는 "ICC가 세 번이나 심사를 유보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며 "ICC가 에둘러 인권위원 선출이나 자격 문제를 거론한 것은 사실상 현병철 위원장 체제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국제사회 인식을 확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ICC 권고를 외면했던 인권위원 선출·지명기관들은 이번 기회로 인권위법 개정과 더불어 투명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한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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