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노조와 협의' vs '통큰 협조' 딜레마
<野 연금안 간보기 '여론뭇매'…文 결단 내릴까>
모호한 개혁안에 여당도 공무원도 반발…샌드위치 신세
문재인, '노조와 협의' vs '통큰 협조' 딜레마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이 25일 발표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여당은 물론 공무원 단체로부터도 거센 비난에 직면하면서, 문재인 대표가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운 '샌드위치' 신세에 처했다.
연금개혁은 공무원 단체와 협의를 거쳐 진행하겠다는 약속과, 국민이 원하는 일에는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기조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문 대표로서는 최근 천안함 사태의 성격을 '폭침'으로 규정하며 안보 논란을 털어내자마자 다시 한번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셈이 됐다.
새정치연합 개혁안 비판의 초점은 기여율과 지급률 변동폭을 정확한 수치로 내놓는 대신 α,β로 표기하는 등 모호한 안을 내놨다는 데 집중되고 있다.
강도높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론과 공무원 단체 사이에 끼여 '눈치보기'만 하면서 확정된 안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공무원 표'를 지나치게 의식해 양쪽 모두의 비난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자성도 나온다.
특히 공무원 노조가 전날부터 야당안의 철회와 문 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새정치연합 여의도 당사 점거 농성을 시작하면서 당은 더욱 곤란한 상황에 내몰렸다.
문 대표가 노조와 면담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여당과의 협상에 차질이 생겨 "야당이 연금 개혁에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노조의 요구를 무시하고 협상을 진행하면 공무원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문 대표는 당장은 공무원 노조를 만나지 않고, 연금특위 간사인 강기정 정책위의장을 통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문 대표가 면담요구에 선뜻 응할 경우 노조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주리라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동시에 강 정책위의장과 김성주 의원 등은 26일 공개 회의 발언에서 "구체적 수치는 대타협의 몫", "(노조의 점거 농성은) 야당이 공무원단체의 눈치를 봐온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반박 논리를 펴면서 논란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결국 문 대표가 어느 쪽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매듭이 풀릴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최근 천안함 사태 발언 등 국민 여론을 최우선시 하는 중도행보를 보인 만큼, 이번에도 과감하게 여당과 협조해 연금개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도 23일 문 대표와 오찬 간담회에서 "야당이 연금 개혁에 소극적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가 하는 일 가운데 옳은 일은 통 크게 협조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다만 반대편에서는 문 대표가 공무원 노조를 외면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주장도 나온다.
4·29 재보선은 물론 내년 총선까지 고려하면 공무원 노조와의 관계 악화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공무원 노조를 만날 계획은 없다"면서도 "아예 만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며, 강 정책위의장 등이 대화를 진행 중이니 좀 더 두고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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