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없는 월성, 아직 번듯한 초석 하나 없어

편집부 / 2015-03-19 13:48:56
"시굴조사일뿐, 본격 발굴 기다려야"


신라가 없는 월성, 아직 번듯한 초석 하나 없어

"시굴조사일뿐, 본격 발굴 기다려야"



(경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935년 신라 멸망과 더불어 천년 왕성 월성(月城)에 묻힌 신라 역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 일환으로 지난해 12월12일 월성 발굴조사에 들어가고, 그 첫 성과가 18일 언론에 공개된 것이다. 사업 주체는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이지만 실제 발굴조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하는 중이다.

연구소는 본격 발굴을 앞두고 월성 내부 구역 중에서 C지구로 설정한 석빙고 인근 중앙 지역 5만7천㎡ 면적에 대한 시굴조사 성과와 그 현장을 공개했다. 그 결과 연구소는 기단과 초석(礎石·받침돌), 적심(積心·초석 밑 다짐돌) 등을 갖춘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건물지 중에는 3호라고 명명한 곳이 이채로운 점을 보였다. 무엇보다 규모가 정면 12칸, 측면 2칸으로 길이가 28m에 이르며 폭은 7.1m인 초대형이었기 때문이다.

월성 내부 조사 첫 대상지로 C지구를 고른 까닭은 지하레이더 탐사 결과 궁궐 중심 건물지일 가능성이 큰 곳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는 방형 건물 15동과 도로유구, 연못터 등이 존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왔다.

한데 현재까지 조사가 아무리 표토를 걷어내고 지하에 유구(遺構) 배치 상황과 유물 출토 양상을 점검하는 시굴조사라 해도 천년 왕국 신라를 지탱케 한 최중심의 힘을 느끼게 할 만한 흔적이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의아함을 자아냈다.

비록 3호 건물지가 제법 크다고 하지만, 그 면모는 앙상한 데다 더구나 초석조차 통상 신라라면 우리가 연상하는 그런 웅대한 돌도 아니었다. 출토 유물도 통일신라시대 혹은 그 이전 삼국시대 신라의 와당 일부를 제외하면 볼만한 것도 없다.

이는 월성에서는 표토만 걷어내면 유구와 유물이 쏟아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분명히 상치한다.

조사단에서도 시굴조사 단계지만 이런 결과에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월성은 현재까지 제대로 된 내부 발굴조사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 1970년대 당시 박정희 대통령 별장을 월성 내부에 지으려다가 시굴 트렌치(조사구덩이)를 넣었더니 각종 유물이 쏟아져 나와 중단하고 말았다는 당시 조사단 전언이 전설처럼 회자하면서 이번 발굴이 한껏 기대를 모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물론 이번 조사는 겨우 월성의 껍질 하나를 벗긴 데 지나지 않는다.

이번 시굴조사는 또 다른 의문도 자아낸다.

연구소에서는 표토 바로 아래층에서 확인한 건물지들을 신라가 멸망하던 무렵의 흔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의문은 바로 이에서 발생한다. 신라시대 마지막 모습의 궁궐이라면, 궁성에 어울리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에 드러난 건물터라든가 유물은 그것과 전연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일부 전문가는 이들 건물터가 신라시대 유적이 아니라 고려시대 유구인 것으로 본다.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 위원장인 심정보 대전 한밭대 교수가 대표적이며, 다른 고고학도 중에서도 신라시대 궁궐은 이번 시굴에서 걷어낸 지하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는 없지 않다. 다른 무엇보다 이들이 고려시대 건물지라면 토기라든가 기와 유물 중에 고려시대임이 확실하거나 그렇게 볼만한 것들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유물이 현재까지는 전연 수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소가 이들 건물지를 신라시대 말기 유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건물지 주변에서 발견한 유물들 때문이다.



더불어 이번 조사가 시굴조사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월성 내부 중앙 지점을 차지한 이번 시굴대상지에 연구소는 길이 20m, 폭 4m 크기의 트렌치 64개를 넣었다. 곳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최대 깊이 45㎝까지만 넣었다.

석빙고 서쪽 부근에서는 한 군데에서 길이, 폭 각각 1.5m인 시굴 트렌치를 깊이 2m까지 넣기도 했다. 이는 과연 현재의 표토층 기준으로 과연 어느 깊이까지 문화층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창선 경주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지중탐사레이더 조사에서는 깊이 4.8m까지 문화층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2m 아래로도 문화층은 계속되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심영섭 경주연구소장은 "시굴조사 결과로 월성이 이렇다저렇다 예단하는 일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면서 "우리가 품은 많은 의문은 본격 발굴을 통해 하나씩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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