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시대의 억압이 개인에게 준 상처 그린 멜로드라마"

편집부 / 2015-03-18 17:21:57
신작 '슬픈 인연' 들고 돌아온 한국 대표 극작·연출가
△ 연극 '슬픈 인연' 연출한 김광림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한국 연극계 대표적인 극작·연출가인 김광림 교수가 18일 오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3.18 ksujin@yna.co.kr

김광림 "시대의 억압이 개인에게 준 상처 그린 멜로드라마"

신작 '슬픈 인연' 들고 돌아온 한국 대표 극작·연출가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모든 세대가 억압이 있지만 197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은 이데올로기, 성에 대한 억압이 심했죠. 나를 돌이켜보면 그 억압이 평생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제도가 개인에게 주는 상처라는 게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국 연극계의 대표 극작·연출가 김광림(63)이 신작 '슬픈 인연'을 들고 돌아왔다. 2012년 전통연희극 '우투리 1.1'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다.

김광림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희곡 '날 보러와요'를 비롯해 많은 히트작을 낳은 인물.

1978년 연우무대에서 극작가로 데뷔한 이후 남북 분단 문제, 재벌중심 한국사회의 단면 등을 다룬 사회성 짙고 실험적 형식의 작품을 여럿 썼고, 2002년에는 '극단 우투리'를 만들어 최근까지 전통연희를 무대화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이런 점에서 '슬픈 인연'은 다소 의외다. 줄거리만 보면 '불륜'이 가미된 통속극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외국으로 도피한 아버지 때문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아버지가 간첩이라고 거짓자백을 한 후 풀려난 '백윤석'. 촉망받는 서울대 법대생이던 그는 이 사건으로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전파상을 하며 아내 '김순임'과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백윤석은 우연히 첫사랑 '박혜숙'을 다시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동시에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아내를 간호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김순임은 박혜숙을 찾아간다.

1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김광림은 이번 작품은 "멜로드라마가 맞다"며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다 멜로드라마"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니 항상 스스로 울타리를 쳐놨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사회의 소외된 사람에게 눈길을 주는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모든 작품마다 형식 실험을 했죠. 그리고는 우리 전통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했고요. 작품마다 뭔가를 새롭게 해보려고 굉장히 노력했는데, 이제는 그런 울타리를 걷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의 소재부터 우연히 찾아왔다.

"소극장을 하는 제자가 색소폰 부는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작품을 써달라고 부탁해왔는데 못 쓰겠더라고요. 이후에 여러 캐릭터 중에서 색소폰 부는 남자만 남기고, 제 주변 이야기들을 이것저것 합쳐서 만든 것이 이 작품이에요."

어느 때보다 '목적의식 없이' 접근한 작품이지만 40년 가까이 시대와 사회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해온 그가 '순도 100%'의 멜로드라마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작품 역시 얼개는 멜로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사회와 사람들이 보인다. 시대가 준 상처를 안고 사는 "정서적 불구자", 주인공 '백윤석'이 이 작품의 상징적 인물이다.

"이 사람은 연좌제 때문에 취직도 못하고 전파상이 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의 친구는 영화감독을 하려다 비디오 가게를 하는 인물이고요. 제 주변에 실제로 있는 사람들이죠. 제가 쓴 작품 중 가장 사실적일 겁니다. '날 보러와요'만큼요."

하지만 그가 이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바로 '화해'다. 이것은 병든 아내 앞에서 등장인물들이 연주회를 여는 것으로 표현했다.

"먼저 손을 내밀어서 화해를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이상하게 양분돼 굉장히 소모적으로 돌아가고 있잖아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 무대에서 배우들이 협업하듯이 같이 연주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강신일(백윤석 역), 방은진·남기애(박혜숙 역), 최용민(김주삼 역) 등 쟁쟁한 배우들이 이 장면을 위해 색소폰, 하모니카, 첼로, 피아노, 비올라를 길게는 1년 넘게 배웠다.

이 작품에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작가의 세상을 향한 시선이 반영됐다.

"뭐랄까 좀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 미워하던 것도, 세상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여기게 됐달까요.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적 문제를 증오의 시선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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